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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35년간 당신 잊지 않았다…이스라엘판 '로버트김' 귀환

중앙일보

입력

한국에선 이스라엘판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 사건으로도 유명한 거물 스파이 조너선 폴라드가 미국에서 수감된 지 35년 만에 조국 이스라엘 품에 안길 수 있게 됐다.

1985년 수감 후 35년 만에 조국행 #이스라엘의 끈질긴 외교 노력이 결실 맺어 #로버트 김 외면한 한국 정부와는 대조적

로버트 김을 외면한 한국 정부와 달리 이스라엘 정부는 수십년간 폴라드 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타국에서 종신형에 처해진 ‘애국자’를 귀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1985년 이스라엘 정보원에게 1급 비밀을 넘긴 혐의로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조너선 폴라드. 폴라드는 이스라엘 정부의 노력으로 지난 2015년 석방됐고, 지난 20일 마침내 이스라엘 이주가 허용됐다. [로이터=연합뉴스]

1985년 이스라엘 정보원에게 1급 비밀을 넘긴 혐의로 체포돼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조너선 폴라드. 폴라드는 이스라엘 정부의 노력으로 지난 2015년 석방됐고, 지난 20일 마침내 이스라엘 이주가 허용됐다. [로이터=연합뉴스]

26일 AFP 등 외신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지난 20일 폴라드의 이스라엘 이주를 허용키로 결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가석방위원회가 폴라드 사건을 검토한 결과, 그가 법을 위반할 것이라고 단정 지을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35년간에 걸친 이스라엘의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1954년 텍사스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폴라드는 1984년부터 해군 정보국에서 정보분석가로 근무했다. 1985년 이스라엘 모사드 정보원에게 아랍 국가들과 구소련에 관한 방대한 양의 1급 비밀을 넘겨준 혐의로 체포됐고 1987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 같은 중형엔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매달 1000달러 등 약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때부터 폴라드 석방을 위해 백방으로 나섰다. 그는 미국에선 돈에 눈이 먼 배신자에 불과했지만, 이스라엘엔 조국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영웅으로 국적까지 부여받았다.

이스라엘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양국 정상회담이 열리기만 하면 폴라드 석방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외교적 마찰도 마다치 않았다. 1998년에는 미국이 중재한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상 참여 대가로 이스라엘 정부가 폴라드 석방을 요구하자,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이를 검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지 테닛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그런 일(석방)이 벌어지면 내가 사임하겠다”고 버텨 무산된 일화는 유명하다.

폴라드의 가석방은 2015년 11월 이뤄졌다. 5년 보호관찰기간에 국외 여행을 할 수 없고 손목에 위치추적장치를 착용해야 한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30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 그를 놓고 이스라엘 국민은 환호했다. 같은 해 7월 미국이 이란과 핵 협상을 타결한 데 대해 이스라엘이 반발하자 폴라드 석방 카드로 이스라엘을 달래려 했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에서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5년 석방된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이 그해 11월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손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중앙포토]

미국에서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9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5년 석방된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이 그해 11월 인천국제공항으로 입국하면서 손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스라엘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내가 사는 조국에 돌아가고 싶다는 폴라드의 뜻을 받아들여 그의 이스라엘 이주도 꾸준히 추진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결정 역시 트럼프 행정부와 이스라엘 정부 사이 외교적 ‘딜’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재를 치적으로 삼으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끌어들이는 데 폴라드 이주 카드를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미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중동 평화구상’을 통해 이스라엘에는 정치적 요구를 들어주고, 팔레스타인에는 경제적 보상을 약속하는 기조를 세운 바 있다.

이스라엘의 폴라드에 대한 이런 구명 여정은 로버트 김 사례와 대조되곤 한다. 조국에 정보를 빼돌려 미국에서 옥고를 치른 점은 로버트 김과 폴라드 모두 비슷했지만, 이들을 대하는 양국 정부의 태도는 극명히 갈렸다.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의 무관에게 북한 잠수함 정보 등 39건의 기밀을 넘긴 혐의로 1996년 체포돼 9년 형을 선고 받은 미 해군 정보분석관 로버트 김은 한국 정부의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형기의 85%를 채운 모범수로서 2004년 7월 석방됐다.

그는 폴라드처럼 돈을 받지도 않았고, 대외비 수준의 정보만 넘겨 한국 정부 차원의 선처 요청이 있었다면 감형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미국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해당 사건을 “외국인 개인의 문제”로 규정하고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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