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동학사상이 경주서 태동했다는 것 아세요?

중앙일보

입력 2020.11.26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88) 

“경북은 동학(東學)사상이 탄생한 곳이자 처음으로 퍼져나간 곳이다. 경주는 동학을 창도한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태어난 곳이자 그가 깨달음을 얻은 지역이다. 최제우가 득도한 뒤 사상을 주변에 전파한 첫 번째 지역 역시 경북 일대였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경북은 한국 동학 역사에서 어느 곳보다 중요한 지역이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지역의 문화유산을 새로 자리매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관심이 특별하다. 대구경북연구원(원장 오창균)과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조현재)은 최근 안동문화예술의전당에서 공동으로 ‘대구경북 문화유산의 가치 재발견과 활용방안’이라는 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학술대회에선 구곡문화(신상구‧박승희), 동학(송의호), 파리장서운동의 재발견(김성실)과 제비원 설화(김공숙) 등의 활용방안 등이 발표되었다. 필자는 ‘대구경북 동학사상’을 재조명했다.

경북 경주시 현곡면 경주국립공원 구미산지구에 세워진 동학 교조 최제우 동상. [사진 경주시]

경북 경주시 현곡면 경주국립공원 구미산지구에 세워진 동학 교조 최제우 동상. [사진 경주시]

“그러나 초창기 이후 대구·경북과 동학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인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의 들불이 번져 나간 1894년 갑오년에는 이웃인 전라도나 충청도 심지어 강원도‧경기도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혁명이 전개되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농민혁명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제 국내를 벗어나 동북아시아로까지 관심이 확대되는 추세다. 주식시장에는 ‘동학 개미’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동학은 일찍이 ‘사람이 곧 하늘’임을 내세웠다. 오늘날 강조되는 인류 보편의 인간평등‧인간존엄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 것이다. 하지만 대구·경북에서 동학은 지금도 관련 연구나 관심이 시들한 실정이다. 왜 그럴까?

동학은 포교 시작부터 백성의 마음을 붙들었다. 당시 조정에 올려진 장계에는 “저잣거리 아낙네와 산골 아이들까지 동학의 글을 외며 전하지 않은 이가 없다”고 나온다. 신분타파와 평등사상이 백성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최제우는 이후 체포되고 경상감영에서 혹독한 심문을 받은 뒤 1864년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참형을 언도받고 대구 관덕당에서 최후를 마쳤다. 지금의 대구 한복판 반월당 인근이다. 최제우가 득도한 지 4년 만인 불혹을 갓 넘긴 41세 때다.

1860년 수운 최제우가 득도한 동학의 발상지 경주 용담정. [사진 경주시]

1860년 수운 최제우가 득도한 동학의 발상지 경주 용담정. [사진 경주시]

1871년 이필제는 경북 영해에서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며 동학교도와 함께 영해부를 습격하는 거사를 벌인다. 이 봉기로 동학교도는 일망타진되고 동학은 이후 대역죄 집단으로 몰린다. 그때부터 경상도 동학은 탄압 속에 지하화의 길을 걸었다는 분석이 있다. 거기다 경북은 유림 세력이 상대적으로 강해 동학은 성리학이 보았을 때 불온한 사상이었다. 최제우의 아버지 최옥은 본래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은 유학자였다.

퇴계 이황 → 학봉 김성일 → 경당 장흥효 → 갈암 이현일 → 밀암 이재 → 대산 이상정 → 기와 이상원 → 근암 최옥 → 수운 최제우로 내려가는 영남학파의 정통 학맥이다. 동학은 여기서 유학을 벗어나 독자 노선을 걸어간 것이다. 여기다 현대 들어 보수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우세한 지역 분위기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고 이이화는 “영남지방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호남‧호서 지방과 함께 항쟁이 가장 치열했던 지역”으로 규정한다. 사실과 인식 사이에 간극이 큰 것이다. 동학하면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전라도 고부와 전봉준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면서 그 사상이 경주에서 태동하였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다.

대구시 중구 반월당 현대백화점 정문 앞에 세워진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 [사진 송의호]

대구시 중구 반월당 현대백화점 정문 앞에 세워진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 순도비’. [사진 송의호]

2017년 동학혁명농민재단이 제출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내 후보로 선정됐다. 이 자료는 유네스코의 내부 사정으로 현재까지 심사 절차를 밟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혁명과 함께 그 바탕을 이룬 사상인 동학과 창시자를 추가 조명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또 최제우가 득도한 경주 용담정과 최후를 맞은 대구에 ‘순도기념관’을 세우는 것도 동학을 문화유산으로 재조명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관련 순례 코스도 만들 수 있다.

토론에 나선 대구경북연구원 곽종무 대구경북연구소장은 “호남‧호서의 농민혁명이 치열했던 배경 등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