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조선 중기 일본 간 퇴계학, 메이지 유신 원동력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12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87)

우리 사상이나 학문도 K팝처럼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게 있을까. 많지 않은 듯하다. 원효의 화쟁 사상과 퇴계학, 다산학 정도다. 그중 퇴계학은 어떨까.

퇴계 이황은 주자학을 깊이 연구해 공자‧맹자 등 중국 대륙의 유학을 조선에서 성리학으로 꽃피웠다. 퇴계학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퇴계학에 대한 오늘날 관심은 동아시아를 벗어나 미국 워싱턴대 마이클 칼튼 교수가 『성학십도』를 영역했을 만큼 서방으로 활발히 알려졌다. 1985년 결성된 국제퇴계학회(회장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는 그동안 27차례 세계를 순회하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특히 일본은 어떻게 일찍부터 퇴계학에 관심을 두었을까. 전래 과정을 돌아본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 세워진 퇴계 이황 선생상. [사진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 세워진 퇴계 이황 선생상. [사진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일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전후해 선진 학문인 조선 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전 도쿄대학 우노 세이이치(宇野精一) 교수는 퇴계 유학이 일본에 전래된 과정을 “후지와라 세이카(藤原惺窩)가 퇴계의 제자인 학봉 김성일과 퇴계를 존신하는 강항을 만나 처음 퇴계의 이름을 들은 것 같다”고 추정한다.

학봉과 후지와라의 만남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시 ‘증학봉첩선(贈鶴峯貼扇)’ 등에 남아 전한다. 충남대 유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을 지낸 김주백은 최근 ‘퇴계학부산연구원보’에 관련 글을 발표했다. 후지와라는 1590년(선조 23) 9월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찾아 숙소인 대덕사(大德寺)에 머물던 학봉을 만난다. 그 자리에서 후지와라는 함께 한 소회를 칠언절구 접이 부채로 전했다. 당시 학봉은 53세, 후지와라는 30세의 승려였다.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는 도산서원 전경.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퇴계 이황의 학덕을 기리는 도산서원 전경. [사진 한국국학진흥원]

“첩선은 비록 하찮으나 담긴 정이 어찌 없으리/우리 토산물을 공에게 드리기 부끄럽소/조그마한 정성 조선국에 기억된다면/한 움큼의 일본 풍치가 되레 전해지리.”

표현은 정중하면서 정이 담겨 있다. 일본 학자는 “후지와라가 당시 여러 차례 학봉을 만나면서 유학에 깨달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한다. 일본 근세 유학의 개조이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스승인 후지와라는 포로로 잡혀간 강항 이전에 학봉을 만나 유학을 알게 된 것이다. 후지와라가 승려 신분에서 유자의 길로 가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주장이다.

후지와라는 퇴계의 ‘천명도설(天命圖說)’을 접하고 제자 하야시 라상(林羅山)에게 전수한다. 하야시는 다시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 20권을 읽는다. 『퇴계선생 일대기』를 쓴 전 포항공대 권오봉 교수는 “그러나 퇴계의 학문을 전면 연구해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한 사람은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라고 강조한다. 그의 제자들은 퇴계의 『주자서절요』를 통해 주자학의 참뜻을 알고 본격적으로 유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퇴계 자신이 생전에 반성의 자료로 엮어 열독한 『자성록(自省錄)』을 번각‧유포해 애송했고 10권짜리 『이퇴계서초(李退溪書抄)』 등을 편찬하기에 이른다.

공자의 79대 종손인 쿵추이장(孔垂長)이 2012년 도산서원을 방문해 할아버지(孔德成)가 남긴 ‘추로지향’ 비 앞에 섰다. [사진 도산서원]

공자의 79대 종손인 쿵추이장(孔垂長)이 2012년 도산서원을 방문해 할아버지(孔德成)가 남긴 ‘추로지향’ 비 앞에 섰다. [사진 도산서원]

이런 과정을 통해 퇴계학은 에도(江戶)시대인 도쿠가와 막부 초기에 정착한다. 경(敬)을 중시한 유학이다. 무사의 나라인 일본은 마침내 유교를 관학으로 삼았다. 전 쓰쿠바대학 다카하시 스스무(高橋進) 교수는 퇴계학은 근대에 이르러서도 메이지유신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존왕과 대의‧애국‧우국 정신의 고양이다. 오늘날도 일본은 유학을 기초로 무사 근성에서 국민성을 개조하고 유교 문화를 익혀 그들 나름의 도덕 국가를 건설하고 있다. 우리 사상과 학문의 ‘수출’이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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