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생후 4개월 된 아기의 위탁 부모 찾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23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36)

얼마 전, 제주도 일반 위탁부모의 밴드에 공지 하나가 올라왔다. 생후 4개월 된 남자 아기의 위탁부모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친부모는 이혼했고, 도저히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이라 위탁부모를 찾는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위탁엄마들은 한마음으로 아기를 걱정했다. 하지만 당장 나서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아기가 걱정됐지만 그렇다고 선뜻 나설 수도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혼자 결정할 수도 없는 일이다. ‘부디 좋은 위탁부모를 만나길’, ‘어디를 가든 건강하게 잘 자라길’…. 마음으로 응원하며 누군가가 아기를 잘 키워주길 바랐다. 생후 4개월이면 밤낮없이 손이 필요할 때고, 그러려면 특별한 사랑과 보호를 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위탁부모가 나타나길 바랐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한 사람’이 아닐까? 자원하는 한 사람, 헌신하는 한 사람, 나눠주는 한 사람, 들어주는 한 사람, 안아주는 한 사람, 사랑하는 한 사람, 희생하는 한 사람….

동기가 자신이 쓰던 노트북을 그냥 준 덕분에 나는 리포트를 무사히 썼고, 위탁가족으로서의 일상을 쓰고 있다. 노트북을 펼칠 때마다 나도 그 ‘한 사람’이 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용기를 내보려 한다. [사진 배은희]

동기가 자신이 쓰던 노트북을 그냥 준 덕분에 나는 리포트를 무사히 썼고, 위탁가족으로서의 일상을 쓰고 있다. 노트북을 펼칠 때마다 나도 그 ‘한 사람’이 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용기를 내보려 한다. [사진 배은희]

성경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했는데 누가 한 알의 밀알이 되려고 할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건 좋지만 그런 사람이 되는 건 부담스러운 일 아닌가?

몇 달 전이다. 우리 집 컴퓨터가 갑자기 고장이 나 대학원 리포트를 쓸 수가 없었다. 그 얘길 듣고 동기 중 한 사람이 자신이 쓰던 노트북을 나에게 그냥 주었다. 속도가 조금 느리지만 리포트하는 데는 문제 없을 거라며 햇살같이 하얀 웃음을 띠고 멋쩍은 듯 노트북을 내밀었다.

“그럼, 선생님은 어떻게 해요?”
“아, 저는 괜찮습니다!”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지금도 그 노트북으로 원고를 쓰고 있는데, 자판 위에 배인 그의 헌신과 배려가 자꾸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행동하는 사람인가? 말하는 사람인가?” 행동하기 위해 위탁엄마로 살고 있지만, 이렇게 글로 말하고 있는 내 모습은 또 뭘까? 가정위탁제도를 알리고,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정말 그 이유뿐일까?

그의 희생과 배려로 나는 리포트를 쓰고, 위탁가족으로서의 일상을 쓰고 있다. 노트북을 펼칠 때마다 나도 그 ‘한 사람’이 되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용기를 내보려고 한다.

은지에게 매달 2만원씩 후원해 주고 있는 ㅈ시인도, 은지 미술학원 수강료를 받지 않고 있는 ㅈ원장도, 은지 맡길 데가 없어서 대학원 수업에 데리고 간 날 오히려 환대해준 ㄱ교수도 그런 사람이다. 조잘조잘 이야기해 준 ㅇ선생도, 노래하는 ㅈ선생도, 이미 ‘한 사람’의 역할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위탁부모로 살 수는 없지만 협력할 수는 있다. 나는 은지를 키우고, 나의 지인은 은지를 인정해 주면서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행복한 삶 아닐까? 편견 없이 대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든든한데 말이다.

자원하는 한 사람, 헌신하는 한 사람, 사랑하는 한 사람, 희생하는 한 사람.... 사람을 살리는 건 '한 사람'이 아닐까? [사진 아동권리보장원]

자원하는 한 사람, 헌신하는 한 사람, 사랑하는 한 사람, 희생하는 한 사람.... 사람을 살리는 건 '한 사람'이 아닐까? [사진 아동권리보장원]

갈수록 위기의 아이가 늘어나고 있다. 어른의 잘못으로 아이의 인생이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친부모의 이혼으로 위탁가정을 찾고 있다는 생후 4개월 된 아기에게 오늘은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나서주길,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공간을 내주고, 삶을 공유해 줄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만날 수 있길.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조금 더 힘을 보태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어느새 찬바람이 불어온다. 코로나에도, 세 번의 태풍에도 꿋꿋하게 버텨온 것처럼 그 아기도 잘 버텨주길, 좋은 위탁부모 만나서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기를 조용히 기도한다. 곧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좋겠다.

“아가야,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단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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