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은지와 6년째 가족, 서로 길들여지는 우리

중앙일보

입력 2020.10.26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34)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시간 때문이야.”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가 한 말이다. 세상에 수많은 장미가 있지만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바람을 막아 준 그 꽃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이다.

나에게 은지가 소중한 것도 은지를 위해 내가 공들인 시간 때문일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주고, 응급실에 달려가고, 밤잠을 설치고…. 작아진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샀던 그 수고가 은지를 소중히 여기게 했을 것이다.

은지는 지난주에 유치원 졸업사진을 찍었다. 졸업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카메라 앞에 선 모습이 정말 의젓한 언니 같았다.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된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훌쩍 큰 모습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레고를 만들고, 더하기 빼기 문제를 풀며 손뼉을 치는 성취감 강한 은지. 놀이터에 가면 주황색 그네부터 타고, 실컷 놀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초콜릿 맛 아이스크림을 먹겠다는 해맑은 은지다.

앞니가 빠져서 밥풀이 자주 튀어나왔었는데 어느새 쌀알만 한 이가 하얗게 나오고 있다. 이빨 빠진 은지의 모습이 졸업사진에도 담겼으니 나중에 보면 또 어떤 웃음을 지을지 궁금하다.

6년 전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만난 은지. 새벽에 일어나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주고, 응급실에 달려가고, 밤잠을 설쳤던 그 수고가 은지를 더 소중히 여기게 했을 것이다. [사진 배은희]

6년 전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만난 은지. 새벽에 일어나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주고, 응급실에 달려가고, 밤잠을 설쳤던 그 수고가 은지를 더 소중히 여기게 했을 것이다. [사진 배은희]

은지와 가족이 된지 6년째다. 시간이 갈수록 우리는 닮아가고 있다. 식성도 닮고, 좋아하는 것도 닮고, 가고 싶은 곳도 닮았다. 인사하는 것도 닮고, 씻는 것도 닮고, 웃음도 닮았다. 이렇게 점점 닮아가면서 가족이 되는가 보다. 신기하게도….

“사랑은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거야.”
어린왕자에게 여우가 한 말처럼, 우린 서로 길들여지는 중이다. 나는 은지에게 은지는 나에게 길들여지면서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중이다. 하지만 지금도 편견을 갖고 물어보는 질문에는 당황스럽다.
“돈은 얼마나 받아요?”

‘가정위탁제도’가 잘 알려지지 않은 제도라서 그럴 것이다. 홍보와 함께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가족을 만들어 줄 수 있고, 함께 공들여 키울 수 있을 테니까.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수 없을 때(사망, 이혼, 장기 입원, 수감 등) 시설에 보내지 않고 위탁가정에서 양육하는 제도다. 나처럼 비혈연 관계인 경우 ‘일반위탁’이라 부르고, 이모·삼촌 등 친인척인 경우 ‘친인척위탁’,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양육하는 경우는 ‘대리위탁’이라고 부른다.

2018년 가정위탁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위탁가정은 총 8965세대다. 그중에서 일반위탁은 전체의 8.5%(764세대), 친인척위탁 26.3%(2354세대), 대리위탁이 65.2%(5847세대) 순이다.

혈연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 문화 때문에 일반위탁가정을 찾는 게 쉽지 않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아이를 내 식구로 받아들이기도 어렵지만,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수 없을 때 시설에 보내지 않고 위탁가정에서 양육하는 제도다. [자료 배은희]

가정위탁제도는 친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수 없을 때 시설에 보내지 않고 위탁가정에서 양육하는 제도다. [자료 배은희]

나는 위탁엄마가 된 후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처럼 자주 무기력에 처박혔다. 오도 가도 못하는 일상을 어떻게 운전해야 할지 몰라서 깊이 고민했다. 그때 여우처럼 지혜로운 책과 나만의 글쓰기를 만났다.

그때부터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했다. 어린왕자를 따라 왕이 사는 별에 가보고, 술꾼이 사는 별에 가보고, 실업가, 가로등 켜는 사람, 지리학자의 별에 가보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됐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마음으로 보아야 하는 거야”
여우의 말처럼, 이 가을엔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는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내게 찾아온 꽃 한 송이를 바라보며 벌레를 잡아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10월의 마지막 주를 보내려고 한다. 하늘이 푸르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모비온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