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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는 두뇌의 신비] 2. 기억…아기는 태교음악 기억한다

중앙일보

입력

우리가 기억을 한다는 것은, 서랍 속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듯 두뇌 속에 뭔가를 저장해 놓았다가 그대로 다시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험을 하면 두뇌는 그것을 잘 분리 정돈했다가 기억할 때 다시 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생각한다.

생각이 날 듯하면서도 안 나는 것이 바로 이런 조립 과정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기억의 대상을 분석.이해하는 과정이 곁들여지면 기억을 잘 하는 것도, 조립설을 뒷받침한다. 분석 과정이 두뇌가 나중에 조립하는 메커니즘을 잘 닦아놓아 기억이 잘 되는 것이다.

네살보다 어린 아기들이 한번 경험한 사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도 두뇌의 기억 재조립과 관계가 있다.

재조립을 하려면 좌뇌와 우뇌가 원활하게 정보를 교환해야 하는데, 좌뇌와 우뇌를 이어주는 통로인 '뇌량'이란 것이 네살 이후에야 충분히 발달한다.

때문에 아기는 재조립을 잘 못해 기억도 잘 못한다. 우리가 어릴 때 일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오래돼서 지워졌다기보다, 이렇게 아예 기억을 하기 어렵게 돼 있기 때문이다.

아주 어려서라도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이 생생하게 남아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런 것은 '섬광 기억'이라고 해서 두뇌의 분석 작용뿐 아니라 놀람.고통 등 정서와 관련된, 또 다른 기억작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기가 한번 경험한 사건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반복에 따른 기억은 할 수 있다. 말을 배우는 것이 그 예다.

태아도 이런 식의 반복에 의한 기억은 할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영국 라이체스터대 연구진은 출산을 석달 앞둔 산모 11명을 택해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일부는 특정한 클래식 음악을, 나머지는 요란한 팝송을 계속 틀어줬다.

아기가 태어난 지 1년 뒤, 다시 음악을 들려줬다. 그랬더니 태아 때 들은 음악, 또는 그 비슷한 음악이 나오면 아이들이 스피커로 눈을 돌려 한참 바라보는데, 다른 음악에는 아예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는 BBC를 통해 전세계에 알려졌다.

작은 세계에서 보면, 기억을 하게 만드는 것은 두뇌의 신경세포들이다. 어떤 경험을 하면 신경세포들끼리 신호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망이 발달하게 된다. 이 회로망이 잘 유지되면 기억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끊어지면 혼란이 생기거나 기억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회로망도 근육과 비슷해 자꾸 쓰면(자꾸 반복해 회상하면) 근육이 굵어지듯 튼튼히 연결되고(기억이 잘 되고), 오래 안 쓰면 쇠퇴해 기억이 사라진다.

더 작은 세계로 들어가 보자. 처음 어떤 경험을 하면, 이 때문에 자극을 받은 신경세포 내에서는 특수한 단백질이 순간적으로 변형되며 신호가 아주 잘 전해지게 된다.

기억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경세포에는 변형된 단백질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주는 효소가 있다. 그래서 변형된 단백질은 금세 복원되고, 그 결과 우리는 기억했던 것을 잊게 된다.

전화번호를 한 번 듣고 잠깐 기억했다가 다시 잊게 되는 동안, 신경세포안에서는 이렇게 기억과 관련된 단백질이 변형됐다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과정이 일어난다.

반면 경험이 반복되거나, 아주 충격적인 경험을 하면 신경세포에도 강한 자극이 가게 된다.

그러면 신경세포의 유전자까지 자극을 받아 새로운 단백질이 만들어지면서 다른 신경세포와 연결하는 가지를 만든다. 기억 신호 전달 통로로 쓰이는 이 가지는 웬만해선 없어지지 않는데, 이것이 오랫동안 어떤 일을 기억하게 만든다.

이렇게 우리가 다양한 지식을 습득하고, 경험함에 따라 두뇌 안에서는 작은 변화들이 일어난다. 이런 것이 쌓이고 쌓여 사람은 각기 다른 두뇌 구조를 갖게 되는데, 성격과 사고방식 등이 사람마다 다른 이유를 바로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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