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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음대국' 오명 벗자

중앙일보

입력

'신임 장관의 프로필에 두주불사(斗酒不辭:말술을 사양하지 않는다)가 자랑인양 등장하는 나라'.

'폭음 대국'인 한국은 '알콜 중독자 대국'이기도 하다. 서울대 의대 정신과 이정균 교수팀이 미국 정신의학회의 기준을 적용해 국제비교(1994년)한 결과를 보면 국내 성인 5명 중 1명(21.7%)은 치료가 필요한 알콜 중독자다. 미국(13.7%).독일(13.1%) 등 선진국의 두배에 육박한다. 세계 최고 수준이며 알콜 중독이 '국민병'인 것이다.

영동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남궁기 교수는 "한국인은 서구인에 비해 유전적으로 알콜 분해효소가 절반 수준인데도 술은 훨씬 많이 마신 결과"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가 96년 1백53개 국가를 대상으로 음주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자. 우리의 성인 1인당 알콜 섭취량은 연간 14.4ℓ로 슬로베니아(15.2ℓ)에 이어 세계 2위로 나타났다. 매주 소주 두병반씩 마셔야 가능한 양이다. 미국(8.9ℓ).일본(7.85ℓ).독일(11.67ℓ).러시아(8.08ℓ)보다 훨씬 많다.

게다가 알콜의 대부분인 12.0ℓ는 도수가 높은 독주(spirits:소주.위스키.보드카 등)로 소비한다. 독주로만 따지면 슬로베니아(0.9ℓ).미국(2.4ℓ).일본(2.6ℓ).중국(4.4ℓ) 등 다른 국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1위다.

마시는 행태도 과격해 '2차는 기본, 3차는 필수, 4차는 선택'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장소를 옮겨다니며 죽기살기로 마신다.

여기엔 술에 취해 비틀거리거나 소란을 피워도 실수 내지는 남성다움의 하나로 이해하는 우리 문화의 영향이 크다. '주량=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정도다. 이러다 보니 술로 인한 피해가 천문학적이다.

인제대 보건대학원 김광기 교수는 "해마다 음주로 인한 사고와 질병으로 2만3천여명이 숨지며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도 16조원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건강 국력'에 엄청난 손실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술꾼들은 알콜 중독자임을 인정하지 않아 치료시기도 놓친다.

그러나 술은 즐기기 위해 마시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상대방에게 술 냄새를 풍기는 것은 중대한 결례며 비틀거리거나 고성방가를 하는 것은 신고 대상이 되는 범법 행위다. 필름이 끊기거나 고주망태가 되는 상태가 1년에 한두번만 있어도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독자로 치부된다.

기분좋게 즐길 수 있는 주량은 술의 종류에 상관없이 남성은 네잔, 여성은 세잔 정도다. 독한 술일수록 잔의 크기가 작기 때문이다.

술이 약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는 '억지로 술 권하기'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후진적 음주문화다.

일상의 긴장을 살짝 풀어주는 정도에서 멈출 수 있는 음주문화를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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