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규모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15일 한국이 서명했다. 협상을 개시한 2012년 이후 8년 만이다. 특히 이번 RCEP 체결로 신흥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세안 진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무역 30%…최대 경제블록 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5일 4차 RCEP 정상회의에서 협정문에 최종 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서명한 RCEP에는 아세안 10개국(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과 비아세안 5개국(한국·중국·일본·호주·뉴질랜드)이 참여한다.
한국은 2013년 5월 1차 협상을 시작으로 최종 서명까지 총 31차례 공식협상에 참여했다. 산업부는 “우리나라가 올해 시장개방 등 남은 협상을 마무리하면서 원산지 등 주요 이슈 합의에 적극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RCEP은 무역 규모(전 세계 중 28.7%), 명목 GDP(30%), 인구(29.9%) 모든 측면에서 세계 최대 규모 경제블록이다. 미국‧캐나다‧멕시코가 참여한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과 일본 주도로 12개국이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TP)보다 무역 규모 면에서 약 2배 가까이 크다.
특히 한국은 지난해 수출액 절반(2690억 달러)을 RCEP 지역에서 올릴 정도로 비중이 큰 시장이다. 산업부는 “세계 최대 규모 FTA를 통해 글로벌 통상 불확실성을 완화하고, 자유무역 확산을 도모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신남방정책 가속화…일본과도 첫 FTA
이번 RCEP 체결로 우리나라는 특히 아세안 시장 진출을 더 가속하게 됐다. 아세안 시장은 지난 30년간 교역은 30배, 투자와 방문객 수는 40배가 늘 정도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곳이다. RCEP 협정에 아세안 10개국이 모두 참여하고 있는 만큼 추가 상품시장 개방은 물론 게임·영화 등 서비스 시장도 열리게 됐다. 김정회 산업부 통상교섭실장 직무대리도 “RCEP 추진 가장 큰 목표는 아세안 시장이었다”며 중요성을 강조했다.
RCEP 참여를 통해 일본과도 첫 FTA 체결한 효과를 낸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부품·소재 분야에서 기술 격차가 큰 일본과 FTA를 맺기 꺼려왔다. 하지만 이번 RCEP 타결로 일본 포함 세계 경제 대국 1~5위(미국·중국·일본·독일·인도)와 모두 FTA를 체결하게 됐다. 김영만 산업부 자유무역협정상품과장은 “우리나라가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10년 이상 혹은 15년에 걸쳐 관세를 유지하다가 철폐하는 식으로 민감한 산업을 최대한 보호했다”고 설명했다.
무역규범·비대면 시장 기반 마련
관세철폐 등 눈에 보이는 이익뿐 아니라 무역규범 등 보이지 않는 소득을 올린 점도 긍정적이다. 예를 들어 중국·아세안·호주에 우리 제품을 수출할 때 그동안 원산지 기준이 다 달랐다. 하지만 RCEP이 출범하면서 무역 규범을 통일하게 됐다. 당연히 우리 기업 편의성도 커지는 부분이다.
특히 이번 RCEP에는 규모가 커지고 있는 전자상거래 분야 협정도 도입해 비대면 경제 대응 기반도 마련했다. 또 지식재산권 협정도 개선해 한류 등 무형상품 규범도 개선했다.
미·중 무역갈등 완충 역할 할까
RCEP이 강대국 중심 무역질서를 견제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RCEP은 아세안 개발도상국과 일본·우리나라·호주 같은 선진국이 함께 참여한 다자주의적 무역 협정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미·중 무역갈등을 완충하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다.
송기호 통상전문변호사는 “RCEP이 다자주의 요소가 강한 만큼 미국 일방주의를 견제하고 중국에는 책임성 있는 역할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바이든 정부가 오바마 정부 TPP처럼 중국을 배제한 미국 주도의 새로운 무역협정을 시작할 경우 RCEP과 다소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