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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비번 안 주면 처벌…추미애 ‘한동훈 방지법’ 추진 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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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 요구 불응자에 대한 처벌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해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발상”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추 장관은 또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 기소 경위에 대한 진상 확인 지시를 내려 기소 주체인 서울고검과도 갈등을 빚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금태섭 “인권, 하루아침에 유린” #검찰 내 “법치주의 근간 흔들어” #정의당도 “잘못된 지시 철회해야” #추, 정진웅 기소는 진상 확인 지시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 차장에 대한 직무집행 정지 요청을 해온 것과 관련해 12일 “기소 과정에서 주임검사 배제 및 윗선의 기소 강행 의혹이 제기됐고, 검찰총장의 정 차장 직무집행 정지 요청 과정에서도 대검 감찰부장이 결재에서 배제됐다”고 말했다. 이어 “대검 감찰부에 기소 과정 적정성에 관한 진상 확인 지시를 내렸고, 그 결과에 따라 직무집행 정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판사 출신의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퇴임 전 청와대에 제청했던 인물로, 채널A 사건 수사 등 과정에서 윤 총장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현재 옵티머스·라임 사건과 관련해 윤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진행중이기도 하다.

한동훈

한동훈

앞서 서울고검은 채널A 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한동훈 검사장 휴대전화 압수 때 그를 폭행한 혐의(독직폭행)로 지난달 30일 정 차장을 기소했다. 대검은 지난주 법무부에 공문을 보내 정 차장에 대한 직무집행 정지 요청을 했다.

추 장관이 이를 수용하는 대신 진상 확인 지시를 통해 정 차장 기소 적정성에 의구심을 드러낸 것이라 기소 주체인 서울고검과의 갈등 가능성도 제기된다. 실제 서울고검은 이날 추 장관이 제기한 ‘주임검사를 배제한 기소 강행’ 의혹에 대해 “감찰부장이 주임검사로서 기소했고, 불기소 의견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추 장관은 진상 확인 지시 사실을 보도자료로 알리면서 “영국 등 외국 입법례를 참조해 법원의 명령 등 일정요건 하에 (휴대전화 잠금 해제)이행을 강제하고 불이행 시 제재하는 법률 제정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덧붙여 논란을 키웠다.

한동훈 검사장에 대해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악의적으로 숨기고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다. 수사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강제로 열어볼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는 취지라 비판이 커지고 있다.

한 검사장 측은 “헌법과 인권 보호의 보루여야 할 법무부 장관이 헌법상 권리인 당사자의 방어권 행사를 ‘악의적’이라고 공개 비난했다”며 “이를 막는 법을 제정한다는 건 반헌법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도 “법무부 장관이 법을 만들어 피의자의 정당한 방어권 행사를 막겠다는 건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재명 경기지사 등 수사 과정에서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함구한 피의자 사례는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들은 몇 개월 동안의 포렌식을 통해 휴대전화 잠금 장치를 해제하고 있다.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은 “그런 법이 ‘자백을 강제하고 자백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법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인권 보장을 위해 수십 년간 노력해서 쌓아 올린 원칙들을, 그것도 진보 정부에서 하루 아침에 이렇게 유린해도 되느냐”고 비판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이러다가 진술 거부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말했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차라리 고문을 합법화하라”고 비꼬았다.

정의당도 잘못된 지시를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장혜영 원내대변인은 “인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법무부 수장이 인권을 억압하는 형태를 보인다면 국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운채·정유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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