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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대한항공에 아시아나 매각 추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그룹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합쳐 매머드급 대형항공사(FSC)로 재탄생시킨다는 방향이다.

대한항공 본사(위)와 아시아나항공 본사. 뉴스1

대한항공 본사(위)와 아시아나항공 본사. 뉴스1

12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된 직후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관련 정부부처와 함께 한진그룹 경영진을 접촉하며 이같은 딜의 밑그림을 그려왔다.

딜 구조는 산은의 자금지원을 받은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산은이 한진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수천억원을 투입하면 한진칼이 금호산업의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사들이는 방식이다.

규모의 경제? 독과점?

정부는 이르면 다음주 산업경쟁력강화관계장관회의(산경장)을 개최해 이와 같은 방식의 인수구조를 확정할 예정이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 합친다면 매출 15조원이 넘는 대형 항공사가 탄생한다. 기체 보유 대수 면에서도 글로벌 톱 클래스 반열에 오른다. 대한항공은 현재 173대, 아시아나는 86대의 기재를 보유하고 있다. 양사를 합한 259대의 기재는 에미레이트항공(267대)에 육박한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긍정적이다.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항공업계의 트렌드는 몸집 키우기"라며 "항공업은 규모의 경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비행기를 띄우고 운항 빈도를 높이면 단가를 낮추고 탑승률을 올릴 수 있다"며 "항공업은 국가적 위신이지만 유럽 등에선 오스트리아나 스위스항공이 루프트한자에 인수되는 등 대형 항공사가 결합되는 것은 시너지가 크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1, 2위 사업자인 두 회사가 결합하면 독과점 우려가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결정할 공정거래위원회는 결합한 회사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으면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4월 공정위가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승인했을 때의 논리처럼 아시아나항공이 기업결합 외에는 회생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한다면 딜 추진이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은행에서 이런 방안을 포함해 여러 아이디어를 만들어와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안다"며 "다양한 방안을 동시에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매각 대상자나 딜 구조 등이 확정된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한진칼 경영권 분쟁 구도도 달라져 

항공업계에선 대한항공의 실적 방어가 채권단의 마음을 움직인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인수계약이 최종 무산되면서 채권단 관리 체제 하에 있다. 총 2조 4000억원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지만 아시아나 정상화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승객 감소로 글로벌 항공업계가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대한항공은 여객기를 화물기로 전환하는 등 화물기 운영 비중을 높이면서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딜이 이대로 성사되면 산업은행은 KCGI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 이어 한진칼의 3대주주로 올라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마지못해 아시아항공을 끌어안고 있던 산은으로선 '애물단지'를 민간에 떠넘기면서 동시에 항공업 구조조정이라는 명분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KCGI-조현아 연합 등에 한진칼 지분의 거의 과반(45.23%)을 내줘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3자 배정 유상증자로 KCGI 측 지분율 희석 효과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번 딜에 단순 항공업 구조조정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고 평가한다. 국책은행인 산은이 사실상 KCGI와 조원태 회장 간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다. 2018년부터 그레이스홀딩스 등 사모펀드를 통해 한진칼과 대한항공 지분을 꾸준히 매집해오던 KCGI 입장에선 산은의 '참전'이 달가울 리 없는 상황이다.

인천공항의 양대항공사 항공기. 연합뉴스

인천공항의 양대항공사 항공기. 연합뉴스

KCGI 사정을 잘 아는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진그룹 기존 경영진이 이번 딜 관련 내용에 대해 사전에 KCGI에 단 한마디도 설명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한진칼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불가피성이 인정될 정도로 부채비율이 높은 상황도 아니고, KCGI 등 기존 주주의 증자 여력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KCGI가 가처분신청 등을 통해 법적으로 이 딜을 문제삼는다면 딜이 산업은행과 한진그룹 측 생각대로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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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곽재민·임성빈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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