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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아버지와 신랑이 손잡고 걸었던 어느 스몰 웨딩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49)

“정말 이렇게 훌륭한 결혼식은 본 적이 없다니까요. 헌데 이럴 땐 왜 그런지 꼭 눈물이 난다니까. 행복하게 잘들 살아야 할 텐데. 아유, 대견도 하지.”

미국 극작가 쏜톤 와일더의 작품 『우리 읍내』의 대사다. 대학 입학하자마자 연극반에 들어갔고 처음으로 참여했던 1학년 1학기 정기 공연이 ‘우리 읍내’여서 그런지 아직도 무대 위 장면이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중에서도 주인공인 조와 에밀리가 결혼하는 2막에서 동네 주민들이 손뼉 치며 두 사람을 축복해주는 신은 지금까지 참석한 어떤 결혼식에서든 문득 떠오르곤 한다.

“정말 어울리는 한 쌍 아녜요? 이렇게 훌륭한 결혼식은 난생처음이에요. 잘들 살 거야. 행복해야지. 그게 최고야. 암, 최고구 말고.”

연극 속 동네 부인의 대사처럼 나 역시 아름답게 성장한 두 남녀와 앞으로 그 둘에게 벌어질 수만 가지 이야기를 그려보며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결혼식은 당사자에게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고, 하객에게는 새롭게 맞이하는 인생에 전적인 격려를 해주는 자리다. 인생의 몇 번 안 되는 축제, 그래서 참석할 때마다 들뜬 마음이 든다. [사진 unsplash]

결혼식은 당사자에게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고, 하객에게는 새롭게 맞이하는 인생에 전적인 격려를 해주는 자리다. 인생의 몇 번 안 되는 축제, 그래서 참석할 때마다 들뜬 마음이 든다. [사진 unsplash]

살다 보면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또 때로는 힘들어 멈추고 싶은 순간도 맞이할 텐데…. 그래도 가족을 이뤄 함께 산다는 건 멋진 일이야. 오늘은 가장 아름다운 주인공이 되어 이렇게 멋진 결혼식을 평생 기억에 남겨 두시길. 무대 위 배우처럼 두 사람을 축복하며 혼잣말을 주억거리면서 말이다.

결혼식은 당사자에게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고, 그 시간에 참석한 하객에게는 두 사람이 새롭게 맞이하는 인생에 전적인 격려를 해주는 자리다. 결혼식은 인생의 몇 번 안 되는 축제이고, 그래서 참석할 때마다 들뜬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지난주 선배의 딸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지만 모여 진행하는 ‘스몰 웨딩’이 트렌드가 된 데다 코로나로 인해 식장에서 양가의 손님을 초대해 진행하는 결혼식을 열기 힘들었기에 정말 오랜만에 참석하는 결혼식이었다. QR코드를 찍고 온도 체크를 하고 입장을 했고, 혼주인 선배 부부에게 멀찍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언제쯤 이 상황이 끝나 마음 편하게 손도 잡고 허그도 하면서 축하를 하게 될지, 코로나로 인해 요즘은 나눌 수 있는 기쁨과 감동이 훨씬 줄어든 느낌이다. ‘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이렇게 닮았으니 잘 살겠어’란 말이 절로 나오는 신랑 신부의 사진을 보며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식이 시작됐다.

결혼식에서 가족이 무대에 직접 나와 결혼하는 자녀에게 축하와 당부의 말을 전하고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니, 한 집안의 행사에 개인적으로 초대받은 친밀함이 더욱 커졌다. [사진 unsplash]

결혼식에서 가족이 무대에 직접 나와 결혼하는 자녀에게 축하와 당부의 말을 전하고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니, 한 집안의 행사에 개인적으로 초대받은 친밀함이 더욱 커졌다. [사진 unsplash]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양가의 어머니가 나란히 입장해 단상 위 촛불을 켜자, 마스크를 쓴 사회자가 큰 소리로 신랑 입장을 외쳤다. 씩씩하게 걸어 나오는 신랑을 기대하며 뒤를 돌아보니, 의외의 장면이 펼쳐졌다. 신랑 옆에는 신랑의 아버지가 함께 서 있었고, 손을 잡은 두 사람이 다정하게 단상까지 함께 걷는 게 아닌가. 아버지와 함께 들어오는 신랑, 생각해보지 못했던 신선한 발상이었다.

이후 선배가 딸의 손을 잡고 입장을 했고, 신랑과 신부가 만나 단상 앞에 나란히 섰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라 신랑의 아버지가 성혼선언문을 낭독했고, 신부의 아버지가 두 사람에게 축복의 인사를 전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가족이 무대에 직접 나와 결혼하는 자녀에게 축하와 당부의 말을 전하고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니, 한 집안의 행사에 개인적으로 초대받은 친밀함이 더욱 커졌다.

“완벽하게 가족이 함께하는 결혼식이네. 근데 난 이제 결혼식에 오면 혼주가 된 입장에서 보게 되더라. 엄마 입장에서 어떻게 준비하고 진행하는지 살피게 되고. 이제 우리 딸도 대학생이니까.”

옆자리에 앉은 후배의 말에 번뜩 나는 어땠나 돌아보게 됐다. 복도에서 만난 부모님의 상기된 표정, 화촉을 밝히는 두 어머니의 떨리는 손길, 주례석에 올라 인사말을 전하며 가끔 울컥하는 아버지, 신랑 신부의 인사를 받을 때 보이던 감동 섞인 미소, 품 안의 자식이 성장해 가족을 이루는 것을 보는 대견함과 그 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아련함 한 조각, 자식과 함께 한 지난날의 소회, 그 시간을 겪어낸 부부로서의 부모, 지금 이 순간을 시작하게 된 자신의 젊은 날과 문득 떠오르는 결혼식…. 나 역시 이렇게 결혼식 내내 혼주를 주목하고 있었구나. 부모의 시선으로 신랑신부를 바라보면서 말이다.

20, 30대는 반짝이는 신랑 신부의 모습에 감탄하고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는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하객이었는데, 지금은 결혼 당사자의 현재를 만들어낸 가족들, 그들의 지난 시간, 그리고 앞으로 이들이 함께할 시간을 가늠해 보고 축복하고 감동하는 하객이 된 것이다.

이제 나는 결혼 당사자의 현재를 만들어낸 가족들, 그들의 지난 시간, 앞으로 이들이 함께할 시간을 축복하고 감동하는 하객이 되었다. [사진 unsplash]

이제 나는 결혼 당사자의 현재를 만들어낸 가족들, 그들의 지난 시간, 앞으로 이들이 함께할 시간을 축복하고 감동하는 하객이 되었다. [사진 unsplash]

“스물 한두 살에 몇 가지 결정을 하면, 눈 깜짝할 새에 일흔이죠.”

조와 에밀리의 어린시절과 결혼식, 그리고 생의 마지막까지를 돌아보는 연극 ‘우리 읍내’에서 사회자가 객석을 향해 던지는 말이다. 인생은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것, 이 평범한 순간의 의미를 되짚어 보는 이 연극의 주제처럼 내 앞의 신랑 신부도 모든 순간의 소중함을 느껴가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부모의 시선으로 전하는 축복이다.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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