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출신 첫 치의학박사 김은철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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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인 것을 무시하지 못하겠지만 병든 사람과 약자를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지난 21일 경희대 치과대학원을 마치고 탈북자 출신으로는 처음 치의학 박사학위를 받은 귀순자 김은철(35)씨는 학위를 수여받은 뒤 이렇게 다짐했다.

지난 89년 귀순하기 직전까지 평양 의과대학과 체코 프라하의 칼 대학에서 구강외과를 전공했던 김씨는 귀순 이듬해인 90년 경희대 치과대학에 진학함으로써 자신의 전공을 계속 이어나갔다.

82년 자강도 강계 연수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한 뒤로 21년간 치의학을 공부한 셈이다.

김씨는 재작년 레지던트를 마치고 영등포에 있는 성애병원 치과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99년 결혼해 대방동에서 아내, 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남한생활 초기 다른 체제로 인해 적응하기 힘들었다는 김씨는 특히 인관관계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김씨는 '북한에서는 같은 고향이나 학교출신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파벌주의라 해서 배척하는데 여기서는 동문회, 향우회 등이 너무 자연스러워 이상했다'며 '특히 치대 선후배관계는 계급사회를 연상케하기도 했다'고 학창시절을 회상했다.

김씨는 그러나 '외로움을 동료들이 많이 감싸안아줘 큰 힘이 됐다'며 이내 밝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본과 3학년때 노인복지시설에 진료봉사를 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김씨는 북한에는 없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평생 가슴에 담고 환자를 대하겠다고 몇번이나 맹세했다.

김씨는 '여기서는 의사하면 `돈'을 먼저 떠올리던데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고 나서야 의사들이 왜 그런 시선을 받게 되는지 알게됐다'며 '`히포크라테스 선서'처럼 오직 약자와 병든자를 위해 직분에 충실하면 그런 시선은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업과 관련 김씨는 남한 의학서적이 북한에서는 거의 배우지 않는 영어와 한자로 돼 있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매년 두 달 이상 국가사업에 동원되는 북한에서의 대학생활보다는 비록 역사와 사회분야에서 많은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철학, 윤리학 등 다양한 교양과목을 배울 수 있는 남한의 교육방식이 더 낫다고 조심스레 평했다.

'이제 80%는 남한사람 다 됐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뿌리가 있는 만큼 그쪽 생각이 가끔씩은 나기도 한다'는 김씨의 모습은 남한사람도 북한사람도 아닌 우리나라사람이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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