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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척 장신의 호탕한 시인” 100주년 조지훈의 전시·낭송회 잇따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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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조지훈. [사진 조태열 전 유엔대사 제공]

시인 조지훈. [사진 조태열 전 유엔대사 제공]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시인 조지훈(1920~68)의 1939년 시 ‘승무’는 섬세한 시어, 관조적 아름다움으로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시 ‘고풍의상’ ‘봉황수’에서 전통적 미에 대한 우아한 찬미의 기법을 보였고, ‘역사앞에서’와 ‘다부원에서’는 현실을 비판하는 차가운 지성을 앞세웠다. 박두진ㆍ박목월과 함께 낸 『청록집』(1946)은 자연을 다루는 서정시의 절정을 보여줬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조지훈 시인의 육필 원고와 유품을 전시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낭송회과 좌담회 등이 잇따른다. 특히 조지훈의 작품 세계 뿐 아니라 인간적 모습까지 전해지는 행사가 많다. 조지훈의 3남 1녀 중 막내 아들인 조태열(65) 전 유엔 대사는 아버지를 “내면과 외면의 멋을 모두 갖추셨던 호인이었다”고 기억했다. 9일 개막해 내년 3월 20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빛을 찾아 가는 길, 나빌네라 지훈의 100년’(서울 안암동 고려대 박물관)에선 조지훈 시인이 생전에 즐겨 사용하던 물품도 볼 수 있다. 곰방대 파이프, 안경, 만년필, 나비 넥타이와 베레모까지 나온다.

“키 180㎝가 넘는 그야말로 육척장신이었고, 한국 역사상 김삿갓·황진이·변영로와 함께 4대 호주가(好酒家)에 든다고 할 정도로 약주를 즐기셨다.” 조 전 대사는 “문우·제자들과 함께 술을 나누시고 시를 읊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한편 아들이 아프게 기억하는 것은 병과 죽음에 관한 아버지의 작품이다. 48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병과 싸운 시간도 길었다. 조태열 전 대사는 “아버지의 마지막 시 ‘병(病)에게’가 가슴에 제일 와닿고 늘 떠오른다. 병과 대화를 나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했다.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 할 때면/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라고 시작된다. “세상을 떠나기 전 병상에서는 ‘절정’이라는 시를 낭송하셨다. 그 육성을 녹음해 놓은 것도 남아있다.”

우아한 시어는 아름다웠지만 시대에 대한 비판은 매서웠다. 시집 『역사앞에서』로 시작해 『지조론』 등에서는 민족문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확신에 찬 어조로 밝혔다. 조 전 대사는 “품었던 정신과 언행이 일치하는 분이셨다”고 기억했다.

그의 100주년 행사는 다양한 곳에서 진행된다. 대산문화재단은 1920년생 작가 11명 중 한 명으로 조지훈 시인을 포함시켜 지난 6월 심포지엄과 낭독 무대를 열었다. 조지훈 시인이 1948년부터 교수로 재직했던 고려대는 이달 9~13일을 ‘지훈 주간’으로 선포했다. 9일 ‘조지훈 열람실’을 개소하고 11일 오후 2시엔 백주년기념삼성관에서 강연 및 추모 좌담회를, 오후 5시에는 『조지훈 연구2』출판기념식을 연다. 12일엔 시 낭송 축제, 13일엔 종합토론을 계획하고 있다.

조지훈 시인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와 그의 고향인 경북 영양에서도 이달과 다음 달 문학제와 예술제가 열린다. 조 전 대사는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진 『청록집』보다도 먼저 썼지만 출판되지 못했던 『지훈시초』의 육필 원고를 이번 특별전에서 최초 공개하고, 올해 책으로도 출간한다”고 전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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