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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만 40분…피아니스트 조성진 2년 만에 국내 독주

중앙일보

입력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4일 독주회를 연 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 크레디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4일 독주회를 연 피아니스트 조성진. [사진 크레디아]

공연 65분에 앙코르 30분. 피아니스트 조성진(26)이 4일 오후 3시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독주회에서 연주한 시간이다. 앙코르는 보통 짧고 가벼운 소품으로 채우지만 조성진은 리스트의 b단조 소나타를 골랐다. 전체 15개 부분으로 이뤄진, 길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품을 통째로 연주했다.

조성진의 이번 독주회는 2년 만의 전국 투어 중 하나였다. 지난달 28일 광주에서 시작했고 대구ㆍ부산ㆍ창원을 거쳐 다섯 번째 도시로 이날 서울에서 연주했다. 원래 올 7월로 잡혔던 공연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격상에 지난달로 연기됐다가, 다시 한 번 날짜를 바꿨다. 관객간 띄어앉기로 좌석의 절반만 판매한 조성진의 독주회는 4일 오후 3시, 7시 30분 두차례 열렸다. 오후 3시엔 슈만 ‘숲의 정경’의 아홉 곡, 시마노프스키 ‘마스크’의 세 곡,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을 휴식시간 없이 연주했다.

본 프로그램은 이렇게 총 65분이었다. 몇 차례의 커튼콜 끝에 무대로 다시 나온 조성진은 리스트 소나타 전체를 연주했다. 이날 오후 7시 30분 공연에서 맨 마지막에 연주하기로 돼있는 메인 곡목이었다. 이례적으로 장대하고 무게감 있는 앙코르였다. 오후 7시 30분 공연 이후엔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10곡을 40여분 동안 모두 연주했다.

조성진은 ‘거대한 앙코르’를 서울 뿐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선보였다. 1일 부산문화회관에서는 오후 7시 공연을 마치고도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연주했다. 오후 3시와 7시, 두차례 공연을 한 후였다. 지난달 30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는 오후 7시 30분 공연 후 쇼팽의 짧은 녹턴 한 곡을 치고 스케르초 네 곡을 2ㆍ1ㆍ3ㆍ4번 순서로 전곡 연주했다. 이 역시 보통 독주회에서 주요 프로그램을 구성할 만한, 비중있는 곡목 세트다. 조성진은 잇딴 공연 연기와 취소 이후 분위기를 반전시키듯 앙코르를 본 프로그램처럼 연주하는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공연 일정 자체도 빡빡했다. 6개 도시 중 광주ㆍ부산ㆍ서울 세 곳에서 하루 두 번 공연했다.

2018년 1월 이후 2년 만에 국내 투어를 한 조성진의 연주 스타일 또한 바뀌어 있었다. 음악의 흐름에 자신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연주했다. 20세기 폴란드 작곡가인 시마노프스키의 흔히 연주되지 않는 작품 ‘마스크’를 선택해 그로테스크하고 현대적인 음향을 망설이지 않고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때로는 과시적이기까지 한 사운드를 만들었는데, 이전의 연주에서는 잘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 지난해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연주했고, 음반 녹음도 남겼던 작품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은 4일 공연에서 한층 가볍고 단순하게 표현했다. 어려운 기법이 계속해서 나타나 악명 높은 곡이지만 최근 이 곡을 여러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는 조성진은 가뿐하게 이 벽을 넘었다.

앙코르로 연주한 리스트 소나타에서도 피아노의 타악기적 성격을 강조하며 온 힘을 다해 건반을 두드리고, 생략과 대비를 통해 전체 스타일을 잡았다. 예전의 조성진이 ‘좋은 연주’를 위해 음악을 가다듬는 편이었다면, 이날 연주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스타일을 선포하는 식이었다.

2015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 뉴욕 카네기홀 데뷔와 재초청으로 세계적 피아니스트의 경력을 꾸준히 쌓고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이 다시 예정돼 있으며 뮌헨 필, LA필하모닉, 보스턴 심포니 등과 무대도 예정돼 있다. 이번 조성진의 국내 리사이틀은 9일 오후 7시 30분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끝난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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