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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아름다운 음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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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김호정 문화팀 기자

노래를 기왕 못하려면 이 정도는 못해야 하는 게 아닐까.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1868~1944)가 용감하게 녹음한 음반은 그 어느 부분을 들어도 괴상하다. 노래가 아니라 비명을 지르는 듯하고, 높은 음에는 올라가지 못해, 그 근처 아무 음이나 부른다. 쉬운 노래도 아니고 모차르트 ‘밤의 여왕’ 아리아, 들리브 ‘종의 노래’처럼 웬만한 소프라노도 어려워하는 노래만 골라 불렀다. 그 노래를 얼마나 태연하게 끝까지 부르는지.

젠킨스는 잊힐 만하면 회자된다. 상상할 수 없이 못하는 노래로 어려운 곡만 지치지도 않고 불렀다는 기막힌 스토리 때문이다. 메릴 스트립이 젠킨스 역을 맡은 영화 ‘플로렌스’도 2016년 나왔는데, 지난달에는 유튜브의 ‘앱솔루트 히스토리’ 채널에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이번 다큐멘터리는 꼭 봐야 했는데, 젠킨스 역을 엄청난 성악가가 맡았기 때문이다. 메조 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의 음성은 풍부하면서 가뿐하고, 세밀하면서 안정적이다. 거기에 집중력 높은 연기까지 할 줄 아는, 현재 세계 정상의 성악가다.

다큐멘터리에서 노래하고 있는 성악가 디도나토. [사진 유튜브 캡처]

다큐멘터리에서 노래하고 있는 성악가 디도나토. [사진 유튜브 캡처]

노래 잘하는 소프라노라서, 노래를 못하는 연기도 잘할 수 있겠거니 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에서도 디도나토는 노래를 잘한다. 자신이 타고난 목소리 그대로 고급스럽고 아름답게 노래를 해낸다. 다큐멘터리의 제목 ‘세계 최악의 오페라 가수’와 정반대다.

이유는 이거다. 다큐멘터리에서 디도나토의 노래는 젠킨스가 스스로 듣는 본인의 음성을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 다큐는 ‘이렇게 노래를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들렸을까’를 따스한 시선으로 탐구해나간다. 젠킨스에게는 자신의 노래가 디도나토의 노래와 같은 세계 톱 수준으로 들렸을 것이라며, 젠킨스가 행복하게 들었던 본인의 노래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아름답기 이를 데 없는 노래다. 다큐멘터리는 또 아마도 젠킨스가 매독의 합병증으로 정확한 음을 못 들었을 거라는 추측에 대해 반대한다. 그보다는 자신에 대한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사랑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젠킨스의 뉴욕 카네기홀 공연은 때마다 매진이었고, 청중은 그의 팬이 됐다. 청중은 웃음이 터질 때마다 그 소리를 가리기 위해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젠킨스는 그걸 순수한 열광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뜨거운 박수까지 받았으므로 행복하게 계속 노래를 할 수 있었다. 1920년대 카네기홀이 ‘보고 싶은 공연’을 조사하면 젠킨스는 5위 안에 들었다고 한다. 비틀스, 베니 굿맨 등과 함께였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건 완벽함이 아니라, 스스로를 근거도 없이 끝까지 믿어주는 모습이었다. 맞는 음이 하나도 없는 음반을 녹음해놓고 음반사에 전화를 해서 “음 하나가 틀렸으니 다시 녹음하자” 했던 젠킨스. 최악이고, 아름다운 음치다.

김호정 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