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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할부주택? 시장은 미덥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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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정부는 공공 소유 부지 등에서 ‘지분 적립형 분양주택’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진은 경기도 구리시 갈매지구의 공공임대 아파트. [사진 LH]

정부는 공공 소유 부지 등에서 ‘지분 적립형 분양주택’을 추진할 계획이다. 사진은 경기도 구리시 갈매지구의 공공임대 아파트. [사진 LH]

정부가 이르면 2023년 ‘지분 적립형 분양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집을 사는 사람이 한꺼번에 집값을 내지 않고 조금씩 나눠 내는 사실상 ‘할부주택’이다.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부족한 30~40대를 겨냥했다.

정부, 2023년 지분적립형 주택 분양 #집값 20% 내고 입주, 살면서 분납 #수십년 눌러살기 현실성 떨어지고 #정부·지자체 땅 부족해 공급 한계 #‘반값 아파트’ 실패 되풀이 우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9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 장관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홍 부총리는 “서울시·국토교통부의 태스크포스(TF) 논의 및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2023년부터 분양이 가능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로 집을 짓기 위해 공공 부문이 보유한 땅을 개발하거나 ▶공공 재개발·재건축 사업에서 조합이 공공 용도로 땅을 내놓는 경우 등에서 지분 적립형 분양주택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지난 8·4 부동산 대책에서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의 하나로 지분 적립형 분양주택의 도입을 제시했다. 홍 부총리는 28일 회의에서 조금 더 구체적인 안을 공개했다. 최초 분양받는 사람은 집값의 20~25%만 내면 입주할 수 있다. 이때 입주자는 토지와 건물의 지분(소유권)도 20~25%만 갖는다. 나머지 지분은 일단 정부나 공공기관의 몫이다.

지분 적립형 분양주택

지분 적립형 분양주택

입주자는 4년마다 집값의 10~15%를 추가로 내고 그만큼의 지분을 취득한다. 이런 식으로 입주자가 지분을 늘려나가다 보면 20~30년 뒤에는 ‘100%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서울시가 지난 8월 ‘연리지홈’이란 브랜드로 지분 적립형 분양주택의 추진 계획을 밝힌 것과 비슷한 구조다. 대신 입주자는 지분의 100%를 취득하기 전까지 공공기관이 보유한 지분에 대해 임대료를 내야 한다. 입주자 입장에선 장기 임대주택에 반전세(전세+월세)로 사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다. 수십년간 집을 팔지 않고 그대로 눌러살 사람이면 몰라도,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자주 집을 옮기는 젊은 층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국토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19년 주거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주택의 평균 거주 기간은 7.7년이었다.

이전 정부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반값 아파트’를 추진했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토지임대부 주택’이 대표적이다. 집을 지을 때 건물의 소유권은 입주자, 땅의 소유권은 공공기관이 갖는 방식이었다. 입주자는 건물값만 내고 들어간 뒤 땅에 대해선 임대료만 내면 됐다.

당시 정부는 2007년 10월 경기도 군포시 부곡지구에서 389가구를 공급했다. 하지만 계약자는 27명에 그쳤다. 예비 입주자들이 매달 40만원씩 내야 하는 임대료(토지분)를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이 보유한 땅이 부족하다는 점도 반값 아파트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로 꼽힌다. 반값 아파트로 유명한 싱가포르는 전체 국토의 80%가량을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 주택 공급 물량을 확대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는 2028년까지 서울에서 지분 적립형 주택으로 1만70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지분 적립형 주택은) ‘로또 분양’에 맞서는 대안적인 주택공급 방식”이라며 “기본적으로 부동산 수익(시세 차익)을 내려는 시장의 성향상 수용성이 다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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