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금감원은 ‘소비자 보호’란 소명이 부끄럽지 않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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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금융감독원의 설립 목적은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 보호’다. ‘금융투자계의 저승사자’로 불릴 만큼 막강한 검사·감독 권한을 금감원에 부여한 것도 소비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금융 소비자의 억장을 무너뜨리는 일들이 잇따라 터졌다. 라임자산운용에서 1조6000억원, 옵티머스에서 5100억원이 환매 중단됐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방지할 제보 외면하고 #국감에서 낯 뜨거운 조직 권한 키우기 주장

어처구니없게도 금감원은 피해를 막을 기회가 있었다. 라임·옵티머스 관련 제보는 뭉갰고, 옵티머스는 사전조사하고서도 충분한 소비자 보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양호 옵티머스 전 회장은 금감원을 방문할 때 VIP 대접을 받았다. 금감원 직원은 옵티머스가 퇴출당할 상황에 이르자 “대주주를 변경하면 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러니 “금감원이 감독은 안 하고 컨설팅만 해줬다”(권은희 국민의당 의원)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또 다른 금감원 직원은 룸살롱에서 청와대 행정관을 만나 라임 검사계획서를 건넸다. 계획서는 옆 방에 있던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곧바로 넘어갔다. 김 전 회장은 라임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조사에 대비할 핵심 정보가 범죄 피의자에게 넘어간 셈이다. 금감원은 계획서를 유출한 직원에게 감봉 경징계를 내렸다. 그래놓고 라임 펀드 판매사에는 ‘저승사자’란 별명에 걸맞게 철퇴를 휘둘렀다.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사실상 옷을 벗으라는 ‘업무정지’ 중징계를 통보했다. 일부 증권사는 “라임 사태는 근본적으로 금감원의 무사안일한 감독에 의한 것”이라는 반박 자료를 준비 중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는 금감원의 어이없는 행태가 집중 거론됐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마치 현 제도 때문에 감독에 한계가 있다는 듯한 발언을 했다. “금감원은 금융위원회가 지닌 금융정책 권한 아래의 집행을 담당하고 있어 예산이나 조직이 모두 예속될 수밖에 없다. 시장 상황을 즉시 감독 집행에 반영하기가 참 어렵다”고 했다. 동의하기 힘들다. 금감원은 직원 약 2000명에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는 조직이다. 예산 부족 타령은 어울리지 않는다. 인원(조직)이 모자란다는 호소 또한 마찬가지다. 2013년 대법원 판결까지 난 키코(KIKO) 사태를 난데없이 재조사하느라 일손이 부족했던 건 아닌가. 룸살롱에서 검사계획서를 넘기는 건 또 예산·조직과 무슨 상관인가.

윤 원장은 국감에서 “조만간 금융감독원 독립 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반성은 하지 않고 권한을 더 얻어낼 생각만 한다. 그게 국민에게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자체 쇄신이 먼저다. 금감원은 KIKO 같은 과거사에 매달려 새로운 피해자 발생은 방치하다시피 했다. 이런 검사 방향을 미래지향적으로 전환하고 직원의 일탈을 막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