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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착한 임대인' 되라더니…임대료 슬쩍 올린 지자체들

중앙일보

입력

지난 9월 한낮인데도 서울 중구 소공지하도상가 일부 점포가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모습. [사진 전국지하도상인연합회]

지난 9월 한낮인데도 서울 중구 소공지하도상가 일부 점포가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모습. [사진 전국지하도상인연합회]

 인천시 부평지하상가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해온 A씨는 지난달 말 가게를 접었다. 주변 상인들은 그가 “장사하면서 이렇게 힘든 건 처음”이라며 눈물을 흘리며 떠났다고 전했다.

박완수 의원, 공유재산 임대료 감경안 조사 #코로나19로 한시적 인하했다가 다시 올려 #공시지가 인상으로 임대료 부담 더해진 곳도 #

 상인들은 “인천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후 임대료를 50% 인하했다가 최근 다시 올리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코로나19 후 매출이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인천시가 공유재산인 지하상가의 임대료까지 다시 원상태로 올렸기 때문이다.

 부평지하상가연합회 박원용 실장은 “코로나19 후 장사가 되지 않아 420여 개 상가 가운데 30%가 비어 있는 상태”라며 “임대료 부담이라도 줄이기 위해 점포를 기존 두 칸에서 한 칸으로 줄이거나 아예 폐업한 곳이 수두룩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서울 중구 소공지하도상가 점포가 코로나19로 폐업한 모습. [사진 전국지하도상인연합회]

지난 9월 서울 중구 소공지하도상가 점포가 코로나19로 폐업한 모습. [사진 전국지하도상인연합회]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들의 줄폐업이 잇따르는 가운데 전국 상당수 지자체들이 공유 재산에 대한 임대료 조정에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 지자체는 올 들어 민간을 상대로는 ‘착한 임대인 운동’을 독려해왔으면서도 정작 코로나19가 장기화하자 한시적으로 낮췄던 상가 임대료를 다시 올리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각 지자체의 공유재산 사용료(임대료) 감경 추진 현황(10월 22일 기준)을 조사한 결과 인천시·대전시·경북도 등이 낮췄던 임대료를 다시 원상복귀 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시는 지난 2~7월 임대료를 50% 감면했지만 지난 8월 이를 원상복구 했다. 경남도는 지난 8월, 대전시와 경북도는 지난 7월까지만 임대료 인하를 적용했다. 박 의원은 “지자체들의 임대료 조정에 따라 영세상인들이 다시 인상된 임대료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서울 중구 을지로 지하상가가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지난 4월 서울 중구 을지로 지하상가가 적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스1

 지자체들은 코로나19로 재정상태가 악화해 임대료 인하 연장이 어렵다고 항변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당장 내년도 본예산을 짜야 하는데 재정 여건상 추가 지원이 어렵다”며 “민간 임대 상가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인천시 역시 재정 상황상 연장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제주도와 경기도·광주광역시·세종시·충북도·충남도·전북도는 연말까지 임대료 감면 혜택을 연장하기로 했다. 이중 제주도는 당초 3~12월로 임대료 인하 기간을 길게 잡았으며, 강원도는 지난 2월에 시작한 임대료 인하를 종료하는 시점을 따로 정해놓지도 않았다.

 박원용 실장은 “민간 건물주들에게 착한 임대인이 되라고 독려할 거면 지자체가 먼저 임대료 부담을 줄여주는 게 맞다”며 “또 인천 전체 15개 지하상가에서 1년에 시에 내는 임대료가 40억원 안팎인 것으로 아는데 그중 절반인 20여억원이 총 11조원 규모의 인천시 예산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임대료를 원상복구했다가 다시 추가 감면을 결정한 곳도 있다. 서울시는 지난 8월 임대료 감면 정책을 없애기로 했지만 상인들의 원성과 호소가 빗발치자 뒤늦게 공유재산심의위원회를 열어 9~12월 임대료를 감면해주기로 방향을 바꿨다.

 부산시도 지난 2~5월 임대료를 50% 감면했지만 기한이 지나자 다시 임대료를 올렸다. 이에 따른 불만이 터져 나오자 지난 9월 공유재산심의위를 열어 8월 중순~11월 중순 임대료 50% 한시적 감면을 의결했다. 울산시와 전남도, 대구시는 지난 6~7월 임대료 인하 기간이 끝나 곧 심의위를 열고 추가 소급 감경을 추진할 계획이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9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9일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박 의원은 “지난 3월 행정안전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를 위해 한시적 공유재산 사용료를 인하할 수 있게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며 “그런데 지자체들이 재정 여건에 따라 사용료 인하를 제각각 추진하다 보니 일부 지역의 영세상인은 8월부터 인상된 임대료를 부담하고 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높아진 공시지가의 영향으로 임대료가 지난해보다 되레 오른 곳들도 많다. 서울시설공단이 관리하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입점 상가 일부는 지난 7~8월 6.4%의 임대료 인상 고지서를 받았다.

 서울 동대문구 풍물시장 또한 사용료 부과액이 지난해보다 9.7%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정성태 풍물시장 상인회장은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노점을 운영하던 분들이 많은데 800개 점포 중 다수 가게가 문을 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박완수 의원은 “지자체가 소상공인 고통 줄이기에 동참하기는커녕 앞장서 임대료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시민의 아픔을 외면한 채 내 배만 불리겠다는 것”이라며 “행안부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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