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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채널A·라임 의혹 불 피운 ‘말’…秋는 수사지휘권 행사

중앙일보

입력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정부서울청사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라임자산운용 사건 주범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폭로’ 이후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것에 대해 법조계 일각에서는 “금융사기 범죄자의 일방 주장에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행사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검찰 안팎에서는 앞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팀의 위증 강요 및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서도 범죄에 연루된 자들의 ‘말’이 핵심으로 작용했다며 “진술 신빙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먼저다”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명숙·채널A·라임 의혹 제기한 ‘말’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수사팀이 위증을 강요했다는 의혹은 당시 검찰 측 증인으로 섰던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동료 수감자의 말로 제기됐다. 당시 한 전 대표와 같이 복역했던 최모씨와 또 다른 한모씨 등은 당시 수사팀의 위증교사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법무부에 진정을 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의 ‘투-트랙(Two-track)’ 조사가 진행됐다.

전직 기자와 현직 검사장이 연루된 채널A 강요미수 의혹의 경우 1조원대 사기 혐의로 재판을 받는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VIK) 대표의 진술이 중요하게 다뤄졌다. 이모 전 채널A 기자가 편지 등을 통해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비리를 진술하도록 강요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의 대리인을 자처한 ‘제보자 X’ 지모씨와 이 전 기자와의 대화 내용도 중요 증거가 됐다. 이 진술들로 수사가 진행됐고, 이 전 기자는 구속기소됐다. 한동훈 검사장도 좌천성 인사 대상 및 수사선상에 올랐다.

‘라임 사태’의 주범 김봉현 전 회장은 최근 옥중에서 작성한 서신을 통해 검사 술자리 접대 및 야당 정치인 수사 미진 등을 주장했다. 최근 법정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줬다고 증언한 이후였다. 다만 검찰 내부에서는 편지 내용 중 ‘수사 상황 실시간 대검 보고’ 등 여러 부분에서 모순적인 내용이 있다며 의구심이 나오고 있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4월2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4월26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경기도 수원남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말’ 나오자…秋, 수사지휘권 행사해

한 전 총리 의혹의 경우 애초 윤석열 검찰총장은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서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한씨는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대검찰청 감찰부 조사에 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지난 6월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한씨 입장이 공개됐고, 추 장관은 당일 곧장 “대검 감찰부에서 중요 참고인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추 장관 취임 이후 첫 수사지휘권 행사로 보고 있다.

채널A 사건 수사에 있어서도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이 혐의 성립 여부를 두고 의견 대립을 빚고 있던 지난 7월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행사됐다. 추 장관은 사안을 ‘검언유착’이라 규정하고, 서울중앙지검이 상부의 지휘·감독을 받지 않도록 했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도중에는 한 검사장 압수수색 과정에서 초유의 ‘검사 육탄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수사지휘권은 다시 발동됐다. 김봉현 전 회장의 옥중 서신 공개 이후 추 장관은 지난 18일 서울남부지검이 검사 비위 및 ‘짜 맞추기 수사’ 의혹을 독자적으로 수사하라고 지휘했다. 이에 더해 윤 총장 가족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총장을 지휘 라인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지휘권을 행사했다.

이모 전 채널A 기자(왼쪽)가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은 이철 전 VIK 대표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뉴시스]

이모 전 채널A 기자(왼쪽)가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오른쪽은 이철 전 VIK 대표가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뉴시스]

법조계 “발언 신빙성 의문, 검증이 먼저”

법조계 일각에서는 한명숙·채널A·라임 등 여러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한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발언에 대해서는 검증이 먼저라는 분석이 나온다. 해당 발언만으로 사안을 먼저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지방의 한 검찰 간부는 “수사 중인 상황에서는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감형이나 책임회피 등 의도에서 여러 허무맹랑한 발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하다. 발언 신빙성과 사실 여부 등을 세심히 검증하는 게 먼저다”라고 21일 말했다. 법관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나 재판에서 나오는 여러 발언들만으로 심증을 굳히거나 사안을 규정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절제돼야 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가 특정 발언으로 인해서 남발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범죄자들의 말 한마디에 법무부가 신속하게 대응하고, 장관의 수사지휘권이 남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추 장관 취임 이후 수사지휘권은 8건의 사건에 대해 4차례 행사됐다. 취임 이전에는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 시절 1차례뿐이었다.

나운채 기자 na.un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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