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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의 머리를 든 메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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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는 원래 미모가 빼어났다. 특히 머리카락이 아름다웠다. 많은 남자가 그에게 반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그중 한 명이었다. 포세이돈은 아테나의 신전에서 메두사를 겁탈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는 신전이 더럽혀졌다며 분노했다. 메두사를 머리카락이 뱀인 괴물로 만들었다. 메두사 얼굴을 직접 본 이가 돌이 되는 저주도 함께 내렸다. 영웅 페르세우스는 메두사 목을 베는 임무를 받았다. 청동 방패를 이용해 임무를 완수했다. 잘린 메두사 머리는 아테나 방패의 장식물이 됐다. 성폭행의 피해자인데, 영웅의 제물 신세까지 되고 말았다.

이탈리아 조각가 벤베누토 첼리니(1500~71)는 이 신화를 모티브로 청동상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를 만들었다. 페르세우스가 잘린 메두사 머리를 들어 보이는 작품이다. 아르헨티나 조각가 루치아노 가르바티(45)는 이 청동상이 있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첼리니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2008년 작품 하나를 내놨다. 〈페르세우스의 머리를 든 메두사〉(Medusa With the Head of Perseus)다. 메두사가 잘린 페르세우스 머리를 들고 있는 작품이다. ‘미투’(#metoo) 폭로가 잇따르던 2018년, 한 전시회에서 전시됐다. 성폭행 피해자(메두사)가 주체적으로 응징에 나선 점이 당시 분위기와 맞았다. 지난주 이 작품의 청동 복제품이 맨해튼의 뉴욕 카운티 형사법원 청사 앞에 설치됐다. 법원은 ‘미투’ 가해자인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 재판이 열린 곳이다.

이 조각상 전시 기간은 내년 4월까지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아마도 2017년 3월 17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맨해튼 월스트리트에 세웠던 조각상 〈담대한 소녀〉(Fearless girl) 전례를 따르지 않을까. 월스트리트의 상징이던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 앞에 설치된 소녀상은 당초 일주일 전시 예정이었다. 하지만 30일, 1년으로 연장됐고 결국 영구전시가 결정됐다. 〈자유의 여신상〉과 〈담대한 소녀〉에 이어 〈페르세우스의 머리를 든 메두사〉도 뉴욕의 상징이 될까. 두고 볼 일이다. 문득 서울을 상징하는 조각상이 뭘까 생각했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상〉일까. 남산 기슭의 〈김유신상〉일까.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일까. 글쎄.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