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치질환자의 부끄러움

중앙일보

입력

치질은 남녀 모두에게 똑같은 비율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 9000명을 분석해 보니 남자 대 여자의 비율이 치핵은 1.5:1, 치루는 6:1정도로 남자가 많았다.
그러나 치열은 0.9:1정도로 여성이 남성보다 조금 많았다.

입원환자 통계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치질이 많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시사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청결하지 못하고, 술을 많이 마시며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먹고 과로를 하기 때문일까?

남성보다 항문이 약한 여성, 참는 것이 문제

그런데 항문의 구조를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약하다. 그리고 여성은 출산으로 치질이 발생할 소지가 많다. 이러한 객관적 조건을 보면 여성환자가 남성환자보다 많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성은 치질이 있어도 대개 참을 것이다. 그러다가 너무 심해져서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병원을 찾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성 치질환자의 부끄러움

지난 가을이다. 육십대의 노신사가 삼십대 초반의 여성과 함께 진찰실을 찾아왔다. 여자 본인은 얼굴이 빨개져서 말도 못하고 같이 온 남자분이 대신 치질로 통증이 심하다고 전한다. 진찰을 해보니 탈항으로 성이 나서 앉기도 힘들 정도이다.

수술을 하기로 하고 보호자 사인을 받는데, 노신사가 '환자의 부' 라고 쓰면서. '시집을 보냈지만 애프터서비스는 계속 해주어야 하지 않느냐' 면서 웃는다. 상당히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한번은 홍도에서 전화를 받았다. 홍도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데 더구나 여자 음성이다. 사연을 들으니 다음과 같았다. 자신은 스물 다섯 살 된 여자로 친구들과 함께 일주일 전에 홍도에 놀러갔다.

평소에 변을 볼 때는 나왔다가 변을 본 다음에 밀어넣으면 들어가던 혹이 이번에는 안들어가고 아프다는 것이다. 자신은 친구들도 모두 그런 혹이 있는 줄 알았는데, 친구들은 아무도 없다고 하며 암인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암이면 물에 빠져 죽을 것이니 솔직히 대답해달라고 한다. 필자가 우선 진찰을 해보게 바로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니 부끄러워 못 가겠다는 것이다. 겨우 달래서 필자의 병원으로 오게 하였다.

필자가 진찰을 해보니 항문섬유종(항문에 생기는 혹으로 암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아가씨는 간단히 수술을 받고 퇴원하였다.


이 아가씨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대개의 사람들은 항문병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기 때문에 피가 조금 나거나 혹이 튀어나오면 혹시 암이 아닌가 하면서 커다란 근심에 휩싸이게 된다.

그러나 치질은 알면 금방 고칠 수 있는 병이다. 그것도 초기에 증상이 쉽게 나타나기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의사의 진찰을 받는 것이 좋다. 부끄러움때문에 일생을 근심과 불안 속에서 불편하게 사는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