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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집회 허용한 판사 탄핵하자" 사법부 독립 흔드는 靑청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보수단체 '애국순찰팀'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택 인근에서 차량을 이용한 드라이브 스루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보수단체 '애국순찰팀'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택 인근에서 차량을 이용한 드라이브 스루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진지하게 고려하고 판단하신 겁니까?”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지난 2일 올라 온 ‘소규모 드라이브스루 집회 허가해준 이성용 부장판사 탄핵청원’의 내용이다. 이 청원인은 “국민이 코로나로 힘들어하고 있는데 소규모 차량 집회를 왜 허용해주느냐”며 이 부장판사의 탄핵을 주장했다. 400자 분량의 짧은 청원글은 개천절이 지나서도 호응이 이어지며 5일 기준 7만명이 넘게 동의했다.

보수단체의 광복절과 개천절 집회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를 향한 여론 재판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은 광복절 도심 집회 신고에 대해 오로지 방역을 목적으로 헌법상의 기본권을 아예 부정할 수는 없다며 제한적인 집회를 허용했을 뿐이다. 법원은 또 개천절을 앞두고 1000명 규모의 대면 집회와 200대의 차량이 행진 시위는 금지하는 대신 9대 이하의 소규모 드라이브스루 집회는 허용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청원인은 400자 분량의 글을 통해 판사를 향해 ‘진지하게 고려하고 판단했느냐’고 질타했다. 이와 관련 법원이 내놓은 8쪽 분량 집행정지 인용 결정문을 보면 ‘집회·결사의 자유’와 ‘공공의 안녕 질서’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성용 부장판사 당시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원청봉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신고한 인원과 시간, 시위 방식, 경로에 비춰볼 때 감염병 확산이나 교통 방해를 일으킬 위험이 객관적으로 분명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혹시 모를 감염병 확산과 교통 방해의 우려를 고려해 이 부장판사는 1인 탑승·집회 후 즉시 해산·각서 제출 등의 조건도 달았다.

법원이 이처럼 감염병 확산과 집회·결사의 자유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에도 판사 개개인을 향해 탄핵 청원이 남발되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저해할 위험이 높다. 앞서 여당 역시 감염병 우려 지역에서는 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의 ‘박형순 금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에대해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이런 무리한 입법은 ‘판사 겁주기’ 시도”라고 반발한 바 있다. 또 대한변호사협회도 성명서를 통해 “법관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법원의 판단을 두고 국민들은 청와대를 향해 판사를 탄핵해달라 청원하고, 국회는 판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하고 나선다면 삼권분립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보수단체는 10월 9일 한글날 집회도 예고했다. 서울지방경찰청에 따르면 9일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한 단체와 집회 건수는 12개 단체, 50건에 달한다. 집회를 강행하려는 보수단체와 금지 통고를 통해 이를 막으려는 정부의 대립이 예고된 가운데 한글날 집회 개최의 여부는 또 다시 사법부의 판단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과 이를 존중하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가람 사회2팀 기자

이가람 사회2팀 기자

이가람 사회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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