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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 소리 들리자, 요양원 어르신은 눈을 번쩍 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요양기관은 추석연휴 면회가 사실상 금지됐다. *기사에 나온 요양병원과 관련 없는 자료 사진입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요양기관은 추석연휴 면회가 사실상 금지됐다. *기사에 나온 요양병원과 관련 없는 자료 사진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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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눈 감고 계신 와상(臥床) 어르신께서 ‘아들’ ‘딸’이라는 말만 들어도 갑자기 눈을 크게 뜨시는데….”

언택트시대 엷어지는 효 ④ 적막한 요양원·요양병원

경기도 부천의 가은병원 김모 간호사는 요즘 마음이 무겁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의료진이나 간병사의 대화 속에 아들이나 딸이라는 말이 나오면 의식이 희미한 환자도 저런 모습을 보인다. 이런 넋두리도 많이 나온다. “우리 딸·아들 언제 오냐” “추석에는 집에 가야지, (날) 데리러 올 거야”

김 간호사는 자녀 생각에 잔뜩 부푼 노인들에게 ‘비대면 추석’을 이해시키려니 참 괴롭다고 한다. 면회를 안 오는 게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못 온다고 입이 마르도록 설명한다.

서울 도봉구 한 노인요양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가운데 27일 도봉구 선별진료소에서 한 시민이 검사를 받기 위해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뉴스1

서울 도봉구 한 노인요양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가운데 27일 도봉구 선별진료소에서 한 시민이 검사를 받기 위해 문진표를 작성하고 있다. 뉴스1

환자에게 읽히는 쓸쓸함 

하지만 환자들의 표정에서 ‘실망감’ ‘쓸쓸함’이 묻어난다. 치매 환자의 자녀 사랑이 더했으면 더 했지 덜 하지 않다는 게 김 간호사의 설명이다. 그는 “(한 치매환자는) ‘자녀·손주 오면 줄 거야’라면서 식사 때 나온 두유를 비닐봉지에 담아 애지중지한다”며 “인지저하로 표현을 못 하지만 자녀 이야기에 반응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요양병원·요양원 환자에게는 이번 추석이 특히 힘겹다. 지난해 말 요양병원 입원환자는 39만3916명, 요양원 환자는 26만6325명이다. 임용희(71·여)씨는 “울적하다”고 솔직히 말했다. 임씨는 여러 차례 척추 쪽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하반신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500여 일째 입원 중이다.

면회 금지된 요양병원. 연합뉴스

면회 금지된 요양병원. 연합뉴스

70대 요양환자 "손주랑 피자 먹고 싶다" 

임씨는 “딸이 서울에 코로나가 많다면서 이번 추석 때 (면회) 못 온다고 하더라”며 “내 욕심 차리느라 애들 곤란한데 오라고 하기도 뭐하다. 그래도 전화통화하고 나면 마음이 부자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손주 이야기를 꺼냈다. 손주와 도란도란 마주 앉아 피자를 함께 먹고 싶다고 했다. 손주는 지난번 통화할 때 “할머니, 코로나 없어지면 나가서 (피자) 사줄게요”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뉴스1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뉴스1

사실상 금지된 요양시설 면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거리두기 2단계 방역상황을 고려해 연휴기간 요양병원·요양시설의 면회를 사실상 금지했다. 코로나19 고위험군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70·80대 이상 코로나19 치명률은 각각 6.9%, 21.1%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국내 평균 치명률은 1.7% 정도다.

정부는 가족의 해외장기체류, 임종 등 부득이한 경우만 요양시설 면회를 허용해줬다. 거리두기 1단계 때는 그나마 투명 차단막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비접촉 방식의 면회는 가능했다. 이번에는 그것마저 안 된다.

비접촉식 면회 모습. 뉴스1

비접촉식 면회 모습. 뉴스1

추석을 앞둔 지난 28일 인천 하나요양원 입소자가 창문 밖으로 가족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인천 하나요양원

추석을 앞둔 지난 28일 인천 하나요양원 입소자가 창문 밖으로 가족들과 인사하고 있다. 사진 인천 하나요양원

옆 병상 할머니와 손 잡고 울다 

면회만 불가능한 게 아니라 잠깐 외출하는 것도 안 된다. 경남 고성군의 A요양원에 입소한 정숙연(95) 할머니는 이번 추석 연휴에 큰아들 집으로 갈 계획을 포기했다. 요양원에서 외출을 금지했다. 슬하에 6남 3녀를 둔 정 할머니는 “명절 연휴 내내 자식들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덜컥 난다”며 “옆에 있던 할머니와 손잡고 같이 울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퍼지기 전까지 정 할머니 자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요양원에 면회를 왔다. 하지만 지난 8월 30일부터 요양원에서 면회를 금지했다. 그는 “자녀들이 요양원에 와도 면회가 안 돼 자녀들이 가져온 음식만 전달받고 있다”며 “음식을 건네받고 자식들이 더 보고 싶어져서 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계획을 묻자 그는 “하릴없이 가만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라며 허탈해했다.

요양원 관계자는 “비닐막을 설치하고 비대면 면회를 허용한 적이 있었는데 어르신들이 가족들 손조차 잡지 못하니깐 더 속상해하시더라”며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야 할 어르신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면회 금지 지침을 내려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남 사천에 있는 B요양병원은 지난달 24일부터 추석 연휴 기간 방문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지자체가 환자 1명당 15분씩 비대면 면회만 허용했다. 지난달 25일 기준 방문 신청 건수는 0건이다. 요양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가 퍼지기 전인 올해 설날에는 연휴 기간57개 팀이 면회를 왔다”며 “정부가 추석 연휴 기간 고향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하자 환자 가족들이 면회를 포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천 하나요양원의 강순영(59) 대표는 코로나19로 효심이 옅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자녀분들 방문이 많이 끊겼다”며 “솔직히 말하면 코로나19 핑계대고 안 오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요양기관 입원이 불효일까

한국효문화진흥원의 ‘사회계층별 효 인식 조사 결과 보고서’(2018)에 따르면 효와 관련한 대면·접촉의 중요성을 엿볼 수 있다. ‘부모와 떨어져 살 경우 자주 연락하고 찾아뵈옵는다’는 설문조사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가 45.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전한다. “전혀 아니다”는 0.2%에 그쳤다.

최근 요양병원에는 보호자의 면회부탁 전화가 왕왕 걸려온다. 이 역시 대면·접촉을 중시하는 효 문화에 기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복수의 요양병원 관계자들은 “‘5분만 면회하면 안 되냐’ ‘어머니 얼굴을 꼭 좀 보고 싶다’ ‘지난 욕창 자국은 어떻게 됐냐’고 애원한다”며 “부모를 요양기관에 맡긴 걸 불효로 여기는 듯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우리들병원 사회복지사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강동우리들병원

서울 강동우리들병원 사회복지사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강동우리들병원

한복 사진촬영 등 프로그램 다양 

사정이 이렇자 전국의 상당수 요양기관은 환자와 보호자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비대면 명절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거나 계획했다. 서울 강동우리들요양병원의 경우 지난달 24일부터 한복 입은 환자 모습을 촬영, 가족들에게 보내주고 있다. 220명 환자 중 100명가량 참여했다. 이 병원 김희숙 간호부장은 “거동이 불편해도 ‘자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고 촬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볼 때 뭉클하다”고 말했다.

울산 이손요양병원은 명절배달 음식 서비스를 한다.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보호자가 명절음식을 가져오면 환자에게 전달한다. 유수상 이사는 “그동안 식중독 사고를 방지하려 과일, 패킹 유제품류를 제외하곤 음식을 일절 받지 않았다”며 “맛있는 명절 음식을 나누고픈 가족들 마음을 생각해 방침을 한시적으로 바꿨다”고 했다. 유 이사는 “코로나19로 추석 행사가 대폭 축소되다 보니 요양기관마다 분위기가 많이 침체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평소 활력도가 5~6이라면 지금은 3 정도로 뚝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경북 칠곡군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향 방문과 모임을 자제하자는 게시물을 올리는 '비대면 추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연합뉴스

경북 칠곡군이 추석 명절을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고향 방문과 모임을 자제하자는 게시물을 올리는 '비대면 추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22일 밝혔다. 연합뉴스

명절에 혈육을 만나지 못했다고 애끓어 하거나 자신을 불효자로 자책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문용훈 한국효문화진흥원장은 “현 (비대면·비접촉) 시국이 효 사상을 옅어지게 한다고 걱정하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본인과 자녀, 부모, 이웃의 건강”이라고 말했다.

김민욱·황수연·이은지·채혜선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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