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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화웨이 이어 SMIC도 제재…중국 ‘반도체 굴기’ 꺾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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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미국 상무부가 최근 중국의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SMIC를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통신 장비와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에 이어 제재 대상을 추가했다.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결이 격화하는 모습이다.

미 기업서 부품 공급 못받는 조치 #길게 보면 국내업체도 어려움 예상

파운드리

파운드리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8일 논평에서 “화웨이에 전방위 압박을 가한 미국이 중국의 첨단산업을 마비시키기 위한 새로운 격전지로 SMIC를 택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의 제재에 따라 SMIC에 부품을 공급하는 미국 업체는 기술·장비를 수출하기 전에 반드시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SMIC와의 거래를 차단하는 조치다. 미국 등 해외 장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SMIC로선 사실상 생산을 접으란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중국에 SMIC는 단순한 반도체 위탁생산 회사가 아니다. 정부가 직접 챙기는 ‘파운드리의 미래’다. 중국 정부는 최근 “SMIC에 2조7000억원을 투자하고 15년간 법인세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목표로 하는 ‘반도체 굴기’(우뚝 일어섬)를 위해선 파운드리를 육성해야 하는데 SMIC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의미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3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SMIC의 점유율은 4.5%로 추정된다. 대만의 TSMC(53.9%)와 한국의 삼성전자(17.4%), 미국의 글로벌파운드리즈(7%), 대만의 UMC(7%)에 이어 세계 5위라는 의미다.

미국이 SMIC를 제재하면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화웨이와 비슷하다. SMIC에 들어가는 기술과 장비가 군사활동에 이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선 ▶화웨이에 추가로 타격을 주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을 견제하는 효과를 미국이 노리고 있다고 본다. SMIC를 막으면 화웨이가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의 생산을 맡길 데가 마땅치 않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미국에선 반도체 양산 시설이 부족해 위기상황이 닥치면 반도체 수급이 어려울 수 있다”며 “이 위험을 해소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미국 내 반도체 양산 시설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기조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부터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2017년 백악관 과학·기술자문위원회는 ‘미국의 장기적 반도체 리더십 확보를 위한 보고서’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당시)에게 제출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부상을 철저히 막고 미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 지배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 내용이었다.

국내 파운드리 업계는 단기적으로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있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28일 보고서에서 “현재 중국의 파운드리 공급은 수요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태”라며 “중국 스마트폰·PC·가전 업체들은 재고 확보 차원에서 한국 파운드리 업체에 긴급주문을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려움이 예상된다. 익명을 원한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SMIC를 막은 게 한국 업체를 도우려는 것이겠냐”며 “결국엔 자국 업체를 키우거나 외국 업체는 미국 내 시설 투자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단기적 반사이익은 분명하지만 장기적으로 (한국 업체의) 파운드리 경쟁이 녹록지 않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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