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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태풍'에 휩싸인 한국경제] 정부 '원-엔 동조 끊기' 안간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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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환율 태풍이 가뜩이나 침체된 한국 경제를 다시 벼랑으로 몰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약(弱)달러' 태풍이 원화가치 절상 압력으로 구체화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연중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수출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가운데 연말 원화 환율이 달러당 1천1백원대로 떨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5조원을 증액해 '육탄 방어'에 나설 태세지만, 시장의 환율 하락 압박을 막아낼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정부는 또 달러 약세에 따라 엔화가 절상되더라도 원화는 엔화를 따라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는 '디커플링(탈동조화)'카드를 꺼내들었다.

◇달러 약세는 대세=지난달 22일 두바이에 모인 선진 7개국(G7)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이 유연한 환율제도를 촉구한 이후 달러 약세는 대세가 돼버렸다. 이때까지 달러당 1천1백70원 선에서 버텨오던 원화 환율도 G7회담 이후 즉각 1.5% 하락해 1천1백50원대로 밀렸다.

문제는 달러 약세가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달러 약세는 미국의 복잡한 정치.경제적 상황의 산물이어서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국내외 전문가들의 일치된 시각이다.

무엇보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5%에 달하는 경상수지 적자가 달러 약세의 주된 배경이다. 강삼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부연구위원은 "금리 인하와 조세 감면 등에도 불구하고 경기 회복이 뚜렷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은 달러 약세 정책을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상황도 달러 약세 정책을 뒷받침하고 있다. 선거에 이기려면 경기 회복과 고용 확대가 필수적이고, 그러자면 고용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 분야를 살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달러 약세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디커플링이 관건=KIEP는 한국경제가 잠재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는 올 하반기 적정 환율을 달러당 1천2백10원 정도로 분석했다. 현재 환율은 적정 수준보다 더 떨어진 것이다.

정부는 일단 달러당 1천1백40원~1천1백50원 선에서 방어선을 치겠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은 원-엔 환율의 추이다. 주된 수출 경쟁 대상이 일본 기업인 만큼, 엔화가 더 큰 폭으로 떨어지면 원화 하락의 부작용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원화 환율이 더 이상 엔화에 동조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원-엔 환율은 지난 수년간 10대 1 수준에서 움직였지만, 경제상황이 달라졌으므로 이 구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중경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일본의 경우 물가가 하락하고 경제가 회복 조짐을 보이지만 우리는 물가가 꾸준히 오른 데다 경기가 부진한 만큼 원화가 엔화에 동조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원-엔 환율은 9월 19일 '10.1대 1(1백엔당 1천13.5원)'에서 10월 7일 10.4대 1(1백엔당 1천47원)로 떨어졌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원화가 엔화와 완전히 따로 움직이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당장은 정부의 디커플링 주장이 먹혀들고 있는 셈이지만, 엔-달러 환율이 추가로 떨어지면 원화 환율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BNP파리바은행 박준근 부장은 "세계적인 달러 약세 흐름에서 원화만 예외일 수 없다"며 "달러당 1백10엔대가 무너지면 원화 환율도 1천1백50원대를 방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구나 국내 경기가 살아나면 원-엔간 10대1 환율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을 수도 있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는 "원화와 엔화간의 10대 1 비율은 시장에서 결정된 것인 만큼 정부의 디커플링 주장을 시장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상렬.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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