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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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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문화부장
서정민 스타일팀장

서정민 스타일팀장

“이거 띵언이네요.” 지인의 SNS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앞뒤로 이어진 그들의 대화를 읽지 않은 상황이라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했다. 줄임말을 잘 쓰는 밀레니얼 세대의 신조어 특성에 맞춰 의미를 짐작해봤다. ‘띵’의 국어사전 풀이는 ‘울리듯 아프고 정신이 흐릿한 느낌’이다. 그렇다면 띵언은 머리가 아프고 정신을 흐릿하게 만드는 ‘헛소리’가 아닐까. 상대가 한 말이 대꾸할 가치도 없이 들릴 때 ‘이거 띵언이네’라고 한다면 제격일 것 같다.

밀리네얼 세대가 요즘 많이 쓰는 신조어는 '띵언'이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명언'과 비슷해서 같은 의미로 쓰인다.

밀리네얼 세대가 요즘 많이 쓰는 신조어는 '띵언'이다. 자음과 모음의 조합이 '명언'과 비슷해서 같은 의미로 쓰인다.

그런데 정반대다. 띵언은 ‘명언’이라는 의미의 인터넷 신조어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한글 서체를 키울수록 잘 이해되는 부분인데 ‘명’의 생김이 ‘띵’과 비슷하다고 해서 쓰이게 된 표현이다. ‘ㄸ’과 ‘ㅣ’의 조합을 ‘며’로 보는 것이다. 응용하면 명곡은 ‘띵곡’, 명작은 ‘띵작’이 된다. 글자의 생김을 이용한 비슷한 표현으로는 반려견을 부를 때 사용하는 ‘댕댕이(멍멍이)’가 있다. 또 ‘대박’ 대신 쓰는 ‘머박’이 있다.

우후죽순 생겨나는 밀레니얼 세대의 신조어와 은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아름답고 소중한 한글을 파괴한다는 이유다. 하물며 ‘띵’ 같은 신조어는 한글의 과학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글자 모양, 발음기관의 모양을 딴 자음과 세계의 근간인 천지인(天地人) 3재(才)를 본뜬 모음의 제자 원리를 건드렸다.

그런데 ‘띵’이나 ‘댕’은 의미가 나쁜 것도, 용례가 나쁜 것도 아니다. 심지어 어감이 귀여워서 무겁고 딱딱한 대화를 친근하고 부드럽게 만든다. 신조어 홍수 속에서 한글의 변형은 과연 어디까지 이해될 수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서정민 스타일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