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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테러' 숨겨진 이야기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 아웅산사건 없었다면 인도서 테러 당했을 수도

83년 아웅산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당시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방문지로 예정됐던 인도에서 비슷한 테러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정보가 정보기관에 의해 사후에 포착됐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아웅산 폭발사고가 발생한 83년 10월9일을 며칠 앞두고 인도에는 한국 국적을 가진 정체불명의 장정 30∼40명이 입국한 사실이 인도당국에 의해 포착됐다. 이들 아웅산사건 직후 종적을 모두 감춰 그후 출국사실이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인도비자를 받아 무더기로 출국한 한국인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었다.

인도에 입국해 종적을 감춘 이들은 하나같이 머리를 짧게 깎고 승복을 입은 승려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인도당국은 파악하고 있었다고 당시 인도주재 외교관은 증언하고 있다.

또 당시 전 대통령이 순방키로 했던 인도·스리랑카에는 북한 배들이 여러차례 오간 사실도 정보당국에 의해 사전 포착됐었다. 아웅산사건후 우리 정보당국은 이같은 사실을 종합해 이들이 북한에서 온 저격범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했었다.

즉 이들은 한국의 여권으로 비자를 받은 후 전 대통령의 버마 다음 방문지인 인도에 잠입해 버마에서의 테러가 실패할 경우 또다른 테러를 준비한 집단일 가능성이 크고,아웅산사건이 터지며 역할이 없어지자 모두 줄행랑쳤을 것이라는 추정이었다.

2. 전 대통령 버마방문은 동생 입김 탓?

당시 전 대통령 버마방문에는 노신영 안기부장을 비롯해 관계자들이 모두 반대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을 내렸다.

외교가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당시 전경환씨는 버마에 대형공사를 따내려는 모건설회사의 부탁을 받고 청와대로 형을 찾아 버마에 꼭 가야 한다고 설득했고, 전 대통령은 외무장관을 불러 방문일정을 조정해 보라고 지시했다. 다행스럽게 버마가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 서남아 순방의 첫 기착지로 정하게 됐다."

이에 대해 전 대통령측은 외교상 가볼만한 나라였기 때문에 동남아 순방계획에 버마를 포함시켰을 뿐 동생의 영향설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3. 전 대통령, 북한에 제한보복 검토

정부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전두환 전대통령은 아웅산테러 사건 직후 북한에 대한 제한적 보복공격을 검토했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그러나 "전면전 확산을 우려한 당시 레이건 미행정부의 강력한 제지로 대북 보복공격은 검토단계에서 무산됐다"고 덧붙였다.

4.전두환 대통령의 목숨을 건진 것은 의전국장의 늑장

全대통령은 간발의 차로 화를 면했다. 후에 밝혀진 사실로는 이날 아침 당시 외교부 의전국장이었던 노영찬씨가 5분가량 지각을 하고 이에 대한 화풀이였던지 全대통령이 3분간 호텔방에 머물러 행사장 도착시각이 늦춰졌다고 한다.

5. 테러주범들 어떻게 됐나

▶ 강민철 :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으로 테러 발생 하루 뒤 미얀마 경찰에 체포됐다. 강은 체포될 당시 안전핀을 뺀 수류탄을 들고 대치하다 수류탄이 터져 오른팔을 잃었다. 84년 사형선고를 받은 후 현재 양곤 외곽의 인세인 교도소에서 20년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진모 소좌 : 강대위와 함께 체포·사형선고를 받고 85년 4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신기철 대위 : 미얀마 경찰과의 대치 중 총격을 받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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