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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내놔"…멕시코, 미국 국경 코앞서 '물 전쟁' 벌인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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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빚부터 갚자” vs “농민부터 살자”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 북부에서 때아닌 물 전쟁이 일어났다. 농업용수를 사수하려는 멕시코 농민들과 미국 쪽으로 물을 흘려보내려는 멕시코 정부가 충돌하면서다.

지난 8일(현지시간) 멕시코 치와와주에서 농민과 국가방위대가 시위 도중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멕시코 치와와주에서 농민과 국가방위대가 시위 도중 격렬하게 충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1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멕시코 북부 치와와주 인근 콘차스 강의 라보낄라(La Boquilla dam)댐 앞에서 농민 시위대와 이를 해산하려는 국가방위대 간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이날 댐 앞에 모인 2000명의 농민 시위대는 댐을 점거하고 수문을 막았다. 시위대는 물이 미국 쪽으로 방류되는 걸 가로막았다. 이날 항의 시위는 치와와주에 있는 또 다른 댐 2곳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농민 시위는 6개월째 이어지며 점점 격화하고 있다. 국가방위대가 화염병, 최루탄까지 동원하면서 시위현장은 폭력 사태로 번졌다. 지난 10일에는 여성 1명이 총에 맞아 숨졌고, 이날은 수력 발전기에 불이 옮겨붙으며 화재와 정전까지 발생했다.

올해 밀린 물 빚, 3억7854만㎥ 

1944년 체결된 미국과 멕시코의 ‘물 협약’.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1944년 체결된 미국과 멕시코의 ‘물 협약’.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번 시위는 미국과 멕시코 사이의 '물 협약'에서 비롯됐다. 육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양국은 2차 세계대전 중 국경 지역 하천물을 두고 갈등을 벌이다가 1944년 '물 협약'을 맺었다. 각국 영토에 소유된 강의 물 가운데 일정량을 상대국에 흘려보내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멕시코는 매년 리오그란데강 물 중 4억3000만㎥가량을 미국으로, 미국은 콜로라도강에서 19억㎥의 물을 멕시코로 보내야 한다. 멕시코는 강물 5년 치를 합산해 일정 기간 나눠서 흘려보내는데, 올해는 10월 24일이 만기일이다.

그러나 올해 멕시코의 '물' 상황이 여의치 않다. 올여름 강수량이 평소의 30%에도 못 미치는 등 전국이 물 부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미국에 제때 물을 보내지 못해 '물 빚'이 쌓였고, 약 한 달 안에 3억7854만㎥의 물을 갚아야 할 처지다.

미국 정부는 멕시코 정부에 물을 조속히 방류하지 않으면 제재를 가하겠다며 압박하고 있다.

멕시코 농민들, 농작물 말라가는데 

멕시코는 미국에서 받는 물이, 주는 물보다 4배 이상 많기 때문에 손해는 아니다. 다만 멕시코에서 물을 받는 지역과 물을 주는 지역이 다르다는 점이 문제다.

지난 9일(현지시간) 올 들어 계속 이어진 가뭄으로 갈라진 치와와주 땅위에 말라버린 소의 사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시간) 올 들어 계속 이어진 가뭄으로 갈라진 치와와주 땅위에 말라버린 소의 사체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물을 공급하는 지역인 치와와주는 주로 목화, 토마토 등 물 수요가 많은 작물을 재배한다. 이 때문에 물 확보를 둘러싼 갈등이 잦았다.

더욱이 올해는 극심한 가뭄으로 물 부족이 심각해 농작물 재배가 위기에 처했다고 농민들은 호소한다. 만약 댐에 저장해둔 물까지 방류하면 내년 봄 농가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치와와주 농가 대표인 게레로 카리요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농민 수천 명이 물 부족으로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우리는 멕시코 국경 내 물을 지킬 권리가 있다. 절대 미국으로 물을 흘려보낼 수 없다"고 항변했다.

멕시코 정부, "미국서 받는 물이 더 많아 포기 못 해" 

농민들의 호소와 항의에도 멕시코 정부는 미국과의 물 협약을 깰 생각이 없다는 입장이다. 멕시코가 미국에서 받는 물의 양이 더 많을뿐더러 치와와주에만 댐 3개에 충분한 양의 물을 확보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9일(현지시간) 멕시코 치와와주 라스 필라스 댐 경비에 나선 국가방위대. [A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멕시코 치와와주 라스 필라스 댐 경비에 나선 국가방위대. [AP=연합뉴스]

또 멕시코가 물 협약을 지키지 않을 경우 미국이 국경을 봉쇄하거나 멕시코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도 지난 10일 "미국과의 물 협약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농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WP에 따르면 미국과 멕시코 간 '물 협약'을 둘러싼 갈등은 장기화할 전망이다. 멕시코가 갚아야 할 '물 빚' 규모를 두고 미국과 멕시코가 이견을 보이고 있고, 물 협약 이행 과정에서 멕시코 정부의 회계부실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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