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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폭로자는 '의인', 秋아들 제보자는 '범죄자'라는 與

중앙일보

입력

‘내부고발자 등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 강화’
2017년 4월 더불어민주당은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제목의 문재인 대선후보 100대 공약을 내놨다. 총 195쪽 분량의 공약집은 목차 등을 제외하면 15쪽부터 시작되는데, 앞부분인 18쪽에 명시된 게 공익신고자 보호였다. 이 공약집의 발행인이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였고, 편집인은 윤호중 현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었다.

현장에서

그해 5월 대선에서 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인수위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공익신고자 보호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박광온(현 민주당 의원) 자문위 대변인은 “내부고발자들은 양심의 호루라기를 분 사람이지만 따돌림, 보복을 당해 가정파탄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박범계 자문위 분과 위원장은 “공익제보자들이 더는 눈물 흘리지 않게 하는 게 국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발간한 대선 공약집. '내부고발자 등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 강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민주당 대선 공약집 캡쳐]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이 발간한 대선 공약집. '내부고발자 등 공익신고자에 대한 보호 강화'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민주당 대선 공약집 캡쳐]

한때 내부고발자 보호가 ‘민주당 정신’의 근간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1992년 이지문 중위(현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가 군 부재자 부정선거 의혹을 폭로했을 때, 김대중 당시 민주당 공동대표는 진상규명과 국방장관 해임을 요구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참여연대 시절 내부고발자 보호 입법운동을 벌여 2001년엔 부패방지법이 제정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5년 반부패기관협의회에서 “내부고발은 결코 배반이거나 부도덕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당의 내부고발자 지키기는 더 가열찼다. 2012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이 이명박 정부의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하자 백혜련 의원은 “장 주무관에 대한 법적조치는 진실을 알리려는 모든 이들에 대한 압박이자 민주주의를 저버린 행동”이라고 편들었다.

2016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도 민주당은 ‘제보자 흑기사’를 자청하며 최순실씨에 대한 각종 의혹을 폭로한 고영태씨 등을 ‘의인’이라고 추켜세웠다. 이듬해 사법농단 의혹을 폭로한 이탄희 판사는 민주당에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2012년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때의 장진수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모습. 그는 이명박 정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해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를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2012년 3월 21일 서울중앙지검에 참고인 자격으로 출석할 때의 장진수 당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모습. 그는 이명박 정부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을 제기해 검찰의 본격적인 조사를 이끌어냈다. [연합뉴스]

하지만 민주당이 지금도 내부고발자 편에 서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행여 자신에게 유리할 때만 제보자 편은 아닐까.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정부ㆍ여당에 부담이 되는 폭로나 제보를 향한 민주당의 눈빛은 180도 달라졌다. 대표적인 이가 2018년 말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다. 신 전 사무관은 당시 “청와대가 기재부에 적자 국채 발행을 압박했다”고 폭로했는데, 민주당에선 “꼴뚜기(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전 수사관)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홍익표 당시 수석대변인)고 공격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뉴스1]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뉴스1]

더불어민주당 김종민·설훈·황희 의원이 11일 당 유튜브 채널 '씀'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씨의 군복무와 관련해 '추미애 장관 아들 특혜? 팩트나 알고 말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유튜브 캡처

더불어민주당 김종민·설훈·황희 의원이 11일 당 유튜브 채널 '씀'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씨의 군복무와 관련해 '추미애 장관 아들 특혜? 팩트나 알고 말해!'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유튜브 캡처

‘윤미향 사태' 당시 회계 부정 의혹 등을 폭로한 이용수 할머니를 향해서도 당시 방송인 김어준씨는 ‘이용수 배후설’을 제기했고, 일부 지지자들은 위안부 피해자인 이 할머니를 “토착왜구”로 몰고 갔다.

여기에 황희 민주당 의원이 12일 추미애 장관 아들 서씨의 병가 의혹을 제기한 당직 사병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단독범" 운운한 것은 내부고발자를 향한 이중잣대의 정점이었다. 덧붙여 서씨 변호인단은 각종 청탁이 있었다고 폭로한 전직 카투사 간부 이철원 대령(예비역)을 고발하면서 “이 대령은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의 군 시절 참모장 출신”이라는 메신저 공격도 빼먹지 않았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1일 오전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추 장관은 2017년 당 대표 시절 “내부고발자는 큰 결심과 용기를 필요로 하고, 고발 이후에도 배신자라는 주홍글씨를 안고 살아가는 게 현실이다”며 “내부고발자를 적극 보호하는 제도 장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아들 의혹을 세상에 알린 동료 사병이 범죄자로 몰리는 현 상황에서 추 장관의 ‘지난 맹세’에 쓴웃음이 날 뿐이다.

손국희ㆍ하준호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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