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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 서약, 5명에 새 삶 선물한 딸 고맙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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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12년 5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고 이윤희씨(왼쪽 위)와 가족들.

2012년 5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고 이윤희씨(왼쪽 위)와 가족들.

“메르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대로면 2004년 이후 처음으로 7만명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겁니다.”

‘장기기증의 날’ 맞은 3인의 사연 #“췌장 이식 받고 새삶, 은혜 갚겠다” #1년 만에 기증 희망신청한 20대도

장기기증의 날인 9일 김동엽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사무처장의 한숨 섞인 말이다. 코로나19 여파로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린 데 이어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도 급감하고 있어서다. 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장기기증 신청자는 지난해 동기간 대비 27% 감소했다.

이런 소식에 고(故) 이윤희씨 어머니 정현(64)씨는 “안타깝다”고 했다. 2012년 6월 승마 중 낙상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딸 이씨는 5명에게 심장과 간장, 췌장, 신장 2개를 선물하고 떠났다. 정씨는 당시 장기 기증에 동의한 뒤 유품을 정리하다 딸의 소지품에서 장기기증 카드를 발견했다고 한다. 정씨는 “아이가 5년 전 장기기증 서약을 해놨었다. 엄마 아빠가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마음에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결국 한 줌의 재로 남는다. 장기 기증은 누군가에게 제2의 삶을 줄 바꿀 수 없는 기회”라고 했다. 이씨의 남동생 상명(30)씨도 조혈모세포를 기증했다.

1형 당뇨를 앓았던 변지현(26)씨는 지난해 췌장 이식 수술 뒤 새 삶을 살게 됐다. 13세 때부터 하루에 4번 직접 인슐린 주사를 놔온 그는 수술한 날(3월 16일)을 두 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변씨는 “수술 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소심했던 성격도 밝아졌다”며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지난 3월 대학에 입학한 그는 최근 장기기증 희망 신청을 마쳤다.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장기기증을 신청한 이종태(54)씨는 “의미와 함께 행운도 왔다”고 했다. 그는 “두 달 사이 지갑을 세 차례 분실한 적이 있는데 지갑을 온전히 되찾은 것은 물론 세이브 카드(장기기증 증서)를 본 습득자가 ‘좋은 일을 하신다’는 쪽지까지 담아 돌려줬다”며 웃었다. 현재 각각 25· 26세인 이씨의 두 자녀도 18~19세 무렵 장기기증에 동의했다고 한다.

김동엽 사무처장은 “실제 기증할 때는 가족 중 선순위자 1명의 동의를 반드시 받게 돼 있다. 장기기증 희망등록을 할 때 가족들과 충분히 의견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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