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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동산거래분석원 강행…'감독' 뺐지만 금융감독원보다 더 세다

중앙일보

입력

지나친 시장 통제·감시와 개인정보·재산권 침해 위험이 있다는 비판에도 정부가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설립을 강행한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 시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불법 행위 등을 포착ㆍ적발해 신속히 단속ㆍ처벌하는 상시 정부 조직을 만든다”고 밝혔다. 가칭 ‘부동산거래분석원’이다. 국토교통부와 금융감독원, 국세청, 검찰, 경찰 등 7개 기관, 13명 인력으로 구성돼 현재 운영 중인 임시 조직(태스크포스)인 ‘불법 행위 대응반’을 확대하는 방향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정부 들어 23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 과열이 잡히지 않자 정부는 관리ㆍ감독기구 신설을 결정했다. 그동안 정부 내부에선 금융감독원을 본뜬 부동산감독원 설립을 논의해왔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한발 물러서 ‘감독원’이란 명칭 대신 ‘거래분석원’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름에서 ‘감독’만 빠졌을 뿐 조직의 성격과 권한은 금융감독원을 넘어설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시장 검사ㆍ제재 권한을 갖고 있지만 정부 조직이 아닌 민간 기구다. 반면 신설 예정인 분석원은 부동산 시장 모니터링에서 단속ㆍ처벌까지 총괄하는 데다 정식 정부 조직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홍 부총리는 “정부 내 설치하는 정부 조직으로서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본시장조사단 사례를 적극 참고했다”며 “국토부ㆍ금감원ㆍ국세청ㆍ검찰ㆍ경찰 등 전문 인력 파견을 확대하고, 금융정보 등 이상 거래 분석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직 구성의 면면을 감안하면 금융감독원(검사ㆍ감독), 금융정보분석원(정보 수집ㆍ분석), 자본시장조사단을 합쳐놓은 것과 맞먹는 막강한 관리ㆍ감독기구가 탄생할 수 있다.

특히 부동산거래분석원의 설립 모델로 삼고 있는 자본시장조사단의 경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허위 정보도 수집·조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와 블로그, 페이스북, 유튜브 방송 등이 분석원의 주요 조사 타깃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참석했다. 뉴스1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5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참석했다. 뉴스1

하지만 설립 전부터 논란은 커지고 있다. 우선 부동산만을 타깃으로 한 관리ㆍ감독기구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불법 금융 조달은 금융감독기구에서, 탈세는 세무당국 등에서 맡는 식이다. 지금까지 한국도 그랬다. 불법 단속은 조직이 없어서 못 했던 게 아니라는 뜻이다.

신설 예정인 분석원과 그나마 비견될 만한 사례는 베네수엘라의 공정가격감독원(Sundde) 정도다. 베네수엘라 공정가격감독원은 일반 상품에서 부동산까지 공정한 가격이 책정됐는지 감시하는 기관이다. 직권 조사가 가능하고 불법적으로 값이 책정됐다면 이를 검찰에 고발하는 권한까지 있다. 하지만 이 조직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 집권 이후 물가 관리에 실패하자 이에 강제 개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마저도 부동산 시장 불법 행위만을 대상으로 하는 조직이 아니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현 국토부) 장관은 본지 인터뷰에서 “정상적 정책이 아니다. 부동산 감독기구를 만든 국가를 본 적이 없다”며 “정부가 부동산 중개소를 돌아다니겠다는 건가”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감독기구 신설이 과연 시장 안정과 단속 실적을 늘리는 데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부동산 거래만 놓고 봤을 때 시장 특성상 불법과 합법,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모호하다. 단순히 투자한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해서, 집 여러 채를 샀다고 해서 투기나 불법으로 몰 수 없기 때문이다.

국토부가 김상훈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불법 행위 대응반이 8월까지 5개월여 101건에 대해 내사를 벌였지만 절반이 넘는 55건은 증거 불충분, 혐의없음을 이유로 종결했다. 정식 수사는 18건에 그쳤고, 검찰 조사로 넘어간 건 이 중에서도 6건에 그쳤다. 이마저도 2건은 약식기소, 1건은 기소유예였다. 처벌받은 건 단 3건에 불과했다. 불법 행위 대응반을 토대로 부동산거래분석원이 설립되더라도 험로가 예상되는 이유다.

불법 대출과 세금 탈루 등 부동산 위법 행위를 놓고 금융당국과 국세청 등이 기존에 해오던 업무와 중복되는 문제도 풀기 쉽지 않은 과제다. ‘옥상옥’이란 지적이 이는 배경이다. 이와 관련 홍 부총리는 “관련 법률 제정안의 입법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했다. 법을 근거로 신설된 정부 조직은 한 번 만들면 없애기 쉽지 않다. 현 정부 들어 공무원 조직 비대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까지 커진 상황이라 우려는 더 크다.

부동산거래분석원 신설에 대한 업계의 반발은 거세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업체 대표는 “최근 각종 부동산 규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힘들다. 여기에 (정부가) 불법행위 단속까지 강화하면 거래 자체가 뚝 끊길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조차 거래 위축은 물론 지나친 시장 통제로 인해 개인 기본권 침해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부동산 감독기구가 없어서 수도권 집값이 오른 게 아니다”며 “오히려 불법 행위 단속 명목으로 (분석원이) 개인 정보를 볼 수 있게 되면 개인 정보 침해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개인 계좌에 있는 자산까지 들여다보면 시장 거래는 오히려 더 위축되고, 일부 거래는 규제를 피해 오히려 음성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는 태릉 골프장 등 공공부지에 조성하는 3만 가구 규모 주택의 내년 사전 분양 일정을 다음 주 중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세종=조현숙 기자, 염지현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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