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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의사 3000명 구멍 뚫리나, 초유의 의대생 시험거부 D-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4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발하여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지난 14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의대 정원 확대 등에 반발하여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전공의가 무기한 파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하면서 다음 달 1일 시작되는 의대생들의 실기시험 거부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이게 현실화되면 한 해 3000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않아 내년에 공중보건의사나 응급실 인턴 의사 충원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 또 몇 년 뒤 군의관 조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생협회에 따르면 의사국가고시 응시 회원 3036명 중 93.3%인 2832명이 원서 접수를 취소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에 응시 원서를 제출했다가 이를 취소한 것이다.

의사국시는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으로 구성된다. 실기시험은 9,10월에, 필기시험은 내년 1월에 시행하고 둘 다 합격해야 의사면허증을 받는다. 실기시험은 다음달 1일 시작해 10월말까지 진행한다. 정맥주사, 혈압 측정, 찢어진 데 꿰매기, 가래 빼기 등의 기본 기술, 환자와 소통 능력, 환자의 질병 상태 파악 능력 등을 측정한다. 전국 40개 대학 의대 본과 4년생이 순차적으로 시험을 본다.

전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의회(KAMC)는 실기시험을 못 볼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은 점을 고려해 시험을 2주 연기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상태다. 정부는 단호하다. "시험 연기는 없다. 예정대로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시원 측이 9월 초순에 실기시험을 보기로 돼 있는 수험생에게 응시 여부를 확인했더니 대부분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실기시험 거부는 사상 처음이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 시험을 거부한 적이 있는데, 당시 시험 시기를 1월에서 2월로 연장함으로써 해결했다. 그때는 실기시험이 없었다. 실기시험은 10년 전에 도입했다.

학생들의 시험 거부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국시 접수 취소한 의대생들에 대한 재접수 등 추후 구제를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와 30일 오후 7시 현재 35만명 넘게 동의했다.

30~31일 전공의가 파업을 철회하지 않으면 의대생들이 시험 거부를 철회할 명분이 약하다. 전공의 파업은 30일 해결될 듯하다가 '파업 계속'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는 의대생 시험 거부도 풀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만약 실기시험 거부가 현실화돼 3000여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못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매년 700명가량의 공중보건의를 충원할 길이 없다. 군 지역 보건소나 보건지소, 오지·낙도 등에서 군 복무 대신 근무하는 의사가 공보의인데, 이들이 배출되지 못해 지역 의료에 큰 구멍이 생긴다. 군의관은 대개 전공의를 마친 전문의를 뽑는다. 올해 674명을 선발했다. 내년에 당장 군의관 선발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몇 년 후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또 인턴 의사를 선발할 수 없어 응급실 등에 근무할 의사가 부족하게 된다.

전국 예과 1학년~본과 3학년 의과대학생들이 동맹휴학을 결의한 상태다. 최악의 경우 이들이 유급되면 의대생 교육에 문제가 생긴다. 유급 상황이 발생해도 신입생을 뽑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내년 신입생과 올해 신입생이 같이 교육을 받게 된다. 강의실·실험실 부족으로 교육이 부실해질 게 뻔하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사가 배출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따라서 국방부도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신입생은 정원대로 뽑을 것이라고 본다. 교육부가 정원을 늘리고 줄이는 것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입시는 수험생 신뢰 차원에서 일정대로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교육부 다른 관계자는 "가정을 전제로 답변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학생 선발은 대학의 자유이다. 만약 유급이 발생해 구제가 필요하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예단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신성식·김상진·김경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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