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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 없다" 13곳 거부당한 응급환자, 3시간 길 헤매다 사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25일 오전 전공의 파업에 따른 응급의료센터(응급실) 진료 축소 및 제한 안내문이 붙어 있는 인천시 부평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로 환자가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지난 25일 오전 전공의 파업에 따른 응급의료센터(응급실) 진료 축소 및 제한 안내문이 붙어 있는 인천시 부평구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로 환자가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전공의 무기한 집단휴진으로 의료공백이 우려되는 가운데 40대 남성이 진료할 곳을 찾지 못해 3시간 동안 길에서 헤매다 결국 숨졌다. 정부는 의료계에 24시간 응급의료체계는 유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밤 약물 마신 A씨 B병원서 진료 불가 #대학병원 6곳, 2차 병원 7곳 "의료진 없다" #결국 27일 오후 사망…의료계 자성의 목소리

 28일 부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지난 26일 오후 11시 23분 경찰이 약물을 마셔 중태에 빠진 A씨를 B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왔다. A씨는 26일 오후 11시쯤 자신의 집에서 약물을 마셨다. B병원은 약물중독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기가 마련돼 있지 않았다.

 119 구급대원은 오후 11시 41분 구급상황관리센터에 약물중독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 병원을 알아보는 동안 구급대원들도 직접 병원 2곳에 전화를 걸어 치료 가능 여부를 물었다. 하지만 2차 병원이어서 진료를 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에 구급대원은 약물중독 환자 치료가 가능한 상급종합병원인 3차 병원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A씨가 경찰과 함께 B병원을 찾은 지 30분이 흐른 뒤였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하는 가운데 전공의들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성모병원 선별진료소 앞에 파업으로 인한 코로나 검사 축소 안내문이 놓여 있다. 뉴스1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하는 가운데 전공의들이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 지난 21일 서울 서초구 성모병원 선별진료소 앞에 파업으로 인한 코로나 검사 축소 안내문이 놓여 있다. 뉴스1

 구급대원이 이날 오후 11시 58분 부산의 한 3차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해당 병원에서는 “의료진이 부족해 응급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같은 시각 또 다른 3차 병원 역시 “응급의학과에 입원 환자를 받아줄 여력이 없다”며 “약물중독 치료에 필요한 응급 투석기도 없어서 수용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1분 뒤인 오후 11시 59분 부산의 또 다른 3차 병원에 연락했더니 “(전공의 파업으로) 의료진 부족으로 환자 수용 불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병원에는 총 240여명의 전공의가 있는데 200명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수술과 외래진료 모두 평소 대비 50% 감소한 상황이다.

 구급대원들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동안 시간은 흘러 27일 자정을 넘어섰다. 다급해진 구급대원은 또다시 2차, 3차 병원 가리지 않고 병원에 전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27일 0시 11분에는 경남에 있는 병원에도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한계를 느낀 구급대원을 급기야 27일 0시 16분에 소방청 중앙구급상황관리센터에 도움을 청했다. 더는 요청할 곳이 없자 구급대원은 이전에 알아봤던 5곳의 3차 병원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5곳 모두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길에서 헤매는 동안 A씨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약물을 마신 지 1시간 30여분이 지난 27일 0시 38분 A씨는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놀란 구급대원이 처음 찾았던 B병원으로 이송해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A씨는 심정지에서 회복했지만,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5분 뒤 구급대원은 경남 양산과 창원에 있는 대학병원 2곳에 전화를 걸었지만 “진료 가능한 의료진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10분이 지난 0시 55분 중앙구급상황관리센터에서 울산대학병원에서 수용 가능하다고 부산소방본부에 알려왔다. 부산소방본부가 구급대에 이 사실을 알리고 나자 시간은 27일 오전 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119구급대원이 부산과 경남지역 대학병원 6곳, 2차 병원 7곳에 문의하면서 1시간 20분이 흘러갔다.

 울산대학병원으로 이송된 A씨는 치료를 받다 결국 이날 오후 5시 47분 사망했다.

지난 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공의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오전 7시부터 8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동안 모든 전공의의 업무를 중단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장진영 기자

지난 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전공의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오전 7시부터 8일 오전 7시까지 24시간동안 모든 전공의의 업무를 중단하고 파업에 돌입했다. 장진영 기자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에야 대학병원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C대학병원 관계자는 “응급실에는 필수유지인력이 근무 중이었지만 내과계 전공의가 부족해 환자를 받을 수 없었다”며 “전공의 80%가 일주일째 파업을 하고 있어 의료공백이 생겼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응급의료종사자는 업무 중에 응급의료를 요청받거나 응급환자를 발견하면 즉시 응급의료를 하도록 명시돼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에 C대학병원 관계자는 “합리적인 사유가 있으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며 “이런 사례가 없어서 면책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법적으로 다시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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