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트럼프 경제참모열전②] 日 크게 울렸던 라이트하이저, 돌연 "모테기 멋진 사람" 왜

중앙일보

입력

지난 6월 미 의회에 출석한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더러 열정적이라고 하고, 그에게 비판적인 이들은 그가 과도하게 격정적이라고 한다.  EPA=연합뉴스

지난 6월 미 의회에 출석한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더러 열정적이라고 하고, 그에게 비판적인 이들은 그가 과도하게 격정적이라고 한다. EPA=연합뉴스

“협상장에서 최대한 우호적으로 행동하려 한다. 난 배우처럼 드라마틱하게 행동하는 타입이 아니다.”

미ㆍ중 무역협상 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1984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NYT는 당시 37세의 나이로 로버트 레이건 대통령이 USTR 부대표로 전격 발탁한 그를 ‘젊은 통상 전문가’로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협상장에서 그와 마주 앉았던 이들은 그의 자평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의 협상 스타일에 정통한 한 외교가 인사는 27일 통화에서 익명을 전제로 “라이트하이저는 ‘세게 밀어붙이는 싸움닭’으로 통한다”고 귀띔했다.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은퇴 후 통상 변호사로 활약하던 라이트하이저를 2017년 USTR 대표로 다시 불러들이자, 포린폴리시가 “통상의 차르(czarㆍ황제)가 돌아왔다”며 환영할 정도였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NAFTA 개정 관련 행사에 등장한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NAFTA 개정 관련 행사에 등장한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 로이터=연합뉴스

라이트하이저가 즐겨 쓰는 무기는 일명 ‘슈퍼 301조(무역법 301조)’다. 미국이 교역 대상국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가 금지하는 차별적인 보복도 가능하도록 한 조치다. 한국도 슈퍼 301조로 수출길이 막힐뻔해 진땀을 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라이트하이저와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은 인물로는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도 있다. 통상 전문 법조인으로 이뤄진 소수정예 로펌인 스캐든 출신인 두 사람은 2017~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장에서 창과 방패의 싸움을 벌였다.

2017년 사진.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 둘째)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왼쪽 둘째)가 워싱턴DC에서 제2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회의를 하고 있다. 김 당시 본부장의 왼쪽에 유명희 현 본부장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2017년 사진. 김현종 당시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 둘째)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왼쪽 둘째)가 워싱턴DC에서 제2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회의를 하고 있다. 김 당시 본부장의 왼쪽에 유명희 현 본부장의 모습도 보인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실용주의 면모 갖춘 타고난 통상 전문가  

라이트하이저에게 제대로 당한 나라가 일본이다. 급속 성장하던 일본 경제에 브레이크를 걸었던 ‘플라자 합의’ 도출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 바로 라이트하이저다. 플라자합의는 일본 엔화 가치를 일부러 높여 미국 달러 가치를 떨어뜨리게 한 조치다. 이후 일본 경제는 엔고 여파로 인한 수출 부진 등으로 버블 붕괴를 맞았다.

제임스 김 아산정책연구원 워싱턴 사무소장 겸 선임연구위원은 27일 통화에서 “라이트하이저는 미국의 통상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협상가”라며 “협상에 이익이 된다면 입장도 바꾸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평”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플라자 합의를 이끈 게 아니라 당시엔 그게 미국의 국익에 맞았기 때문에 저돌적으로 협상을 했다는 의미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의 아사히 신문 27일 인터뷰. [아사히 캡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의 아사히 신문 27일 인터뷰. [아사히 캡처]

통상 전문가로서 라이트하이저의 유연성과 실용주의를 드러내는 사례가 바로 일본에 대한 그의 태도다. 라이트하이저는 새로운 타깃인 중국을 잡기 위해 일본과 손을 잡았다.

그는 27일 일본 아사히(朝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ㆍ일 무역협상에서 일본 측을 잘 배려하도록 하겠다”며 “80년대 일본과 협상을 하면서 일본 역사를 공부하게 됐고, 일본을 좋아하게 됐다”고 말했다. 협상 상대인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상을 두고는 “멋진 사람”이란 표현까지 썼다.

아사히신문은 “80년대의 무역 마찰로 인해 ‘강경파’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젠 미국을 위협하는 중국에 맞서 일본과의 협조를 강하게 호소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비둘기파와 매파 사이    

트럼프의 경제 참모는 크게 친중 온건파(비둘기파)와 반중 강경파(매파)로 나뉜다. 라이트하이저는 당초 매파였다. 비둘기파에는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속한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당초 온건파로 분류됐지만 최근 화웨이(華爲) 제재에서 강경파로 돌아섰다.

지난해 2월 미ㆍ중 무역협상을 위해 만난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류허 부총리. 류 부총리가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라이트하이저는 눈치채지 못해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후 협상 과정에서 둘은 꽤 절친해졌다는 후문. AFP=연합뉴스

지난해 2월 미ㆍ중 무역협상을 위해 만난 라이트하이저 대표와 류허 부총리. 류 부총리가 악수를 위해 손을 내밀었지만 라이트하이저는 눈치채지 못해 어색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후 협상 과정에서 둘은 꽤 절친해졌다는 후문. AFP=연합뉴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6월 “라이트하이저가 트럼프 시대의 무역 전쟁을 재점화할 수 있다”며 중국에 대한 그의 강경한 입장을 집중 조명했다. 하지만 최근 몇 개월간 라이트하이저의 태도를 보면 강경 일변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워싱턴의 중론이라고 한다. 실용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낸 셈이다.

제임스 김 선임연구위원은 “워싱턴 이야기를 들어보면 라이트하이저는 강경과 온건 중간쯤으로 스탠스를 바꿨다고 한다”며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감수하며 중국을 눌러야 한다는 강경파가 아니라, 중국과의 무역을 유지하며 미국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스탠스가 바뀐 데는 그의 중국 측 카운터파트인 류허(劉鶴) 부총리와의 네트워킹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7월 협상을 위해 다시 만난 라이트하이저(가운데)와 류허. 맨 왼쪽은 므누신 재무장관. EPA=연합뉴스

지난해 7월 협상을 위해 다시 만난 라이트하이저(가운데)와 류허. 맨 왼쪽은 므누신 재무장관. EPA=연합뉴스

실제로 라이트하이저는 지난 25일 미ㆍ중 무역합의 1단계의 숨통을 다시 텄다. 트럼프 대통령이 “난 이제 중국과의 무역협상에 흥미를 잃었다”면서 합의를 깰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류허 부총리와 통화한 뒤 “무역합의 1단계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이행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히면서다. 라이트하이저가 심폐소생술로 죽어가던 합의를 살려놓은 셈이다.

라이트하이저가 비둘기로 완벽한 변신을 했다고 기대하기엔 이르다. 라이트하이저가 남긴 말 중엔 “‘보이지 않는 손’이 해결할 거라고 믿는 이들은 틀렸다”는 게 있다. 저돌적인 협상 태도에 대한 지적에 대해 그는 “외국의 정부가 ‘보이지 않는 손’을 조종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의 강력한 개입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중국 체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그가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출 것으로 기대하기 힘들단 의미다.

미국 대통령 선거(11월3일) 일정상 당분간은 숨 고르기에 들어갔을 뿐, 언제든 사나운 매의 발톱을 드러낼 수 있다는 말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