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민·대통령께 죄송, 뉴질랜드엔 사과 못 해" 언쟁 벌인 강경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뉴질랜드 공관에서 벌어진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께서 불편한 위치에 계시게 된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외교 망신'에 대한 여당 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지면서다. 그는 전날에 이어 "국민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뉴질랜드 정부와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국격의 문제'라며 거부했다.

뉴질랜드 성추문 관련 與의원들 릴레이 질책 #"문 대통령 어려운 입장 처하게 해드려 죄송" #뉴질랜드에 대한 사과엔 "국격의 문제" 거부

강 장관은 이날 "뉴질랜드 정부나 뉴질랜드 국민, 피해자에게 사과를 했느냐"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다른 나라에 대해 외교부 장관이 사과하는 것은 국격의 문제"라며 "지금 이 자리에서 사과는 제가 못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강 장관은 "(정상 간 통화에서) 의제가 돼서는 않아야 할 것이 의제가 된 부분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뉴질랜드의 책임이 크다"며 "국내적으로 국민과 대통령께는 죄송하지만, 뉴질랜드에 대해 책임져야 할지는 다른 문제"라고 밝혔다.

강 장관은 또 "(이 문제가) 뉴질랜드에서 언론화되고 정상 차원에서 문제가 나오면서 통상적인 방법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 됐다"며 "외교적 문제가 됐기 때문에 우리의 국격과 주권을 지키면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문제는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날 외통위 전체 회의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뉴질랜드 총리 간 정상 통화에서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문제가 거론된 것에 대해 여당 의원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상 간 외교에서 외교관의 성비위 사건이 거론된 것은 한국 외교사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외교의 기본이 의제 조율인데, 정상 간 회담에서 의제 관리를 제대로 못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강 장관은 "정상 통화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뉴질랜드 측으로부터 이 의제(외교관 성추행 문제)를 다룰 것이라는 얘기가 없었다"며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께서 불편한 위치에 계시게 됐던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지난달 28일 문 대통령과 정상 통화에서 한국 외교관의 성추행 문제를 제기했다. A씨는 2017년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할 당시 남자 직원의 엉덩이와 가슴 등 신체 부위를 부적절하게 접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현재 뉴질랜드 법원은 지난 2월 A씨에 대해 성추행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오른쪽)와 전화 통화하고 있다. [뉴스1·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지난달 28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오른쪽)와 전화 통화하고 있다. [뉴스1·연합뉴스]

이후 논란이 확산됐고, 강 장관은 24일 청와대로부터 뉴질랜드 외교관 성비위 사건 대응에 외교부가 미흡한 점이 있었다는 결과 보고서를 전달받았다.

하지만 강 장관은 뉴질랜드 측에서 해당 외교관에 대한 면책특권 포기를 요청한 데 대해선 "이 상황에서 맞지 않는 요구"라고 말했다. 그는 "뉴질랜드가 면책특권 포기를 요구할 당시 해당 외교관은 이미 다른 나라에 가 있어, 뉴질랜드가 요구하는 면책 특권 포기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이후 (뉴질랜드 측에서) 공관의 불가침성을 포기하라는 요청이 있었다"며 "공관이 누리는 불가침성은 주권 국가가 갖고 있는 핵심 권리인 만큼, 면책특권 포기는 엄중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허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면책 특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직원들의 자발적인 조사에 응하거나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는 대안적 조사 방법을 뉴질랜드 측에 제의했지만 뉴질랜드 측이 받아들이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의 이 발언에 대해 이번 사건의 고소인을 지원해온 뉴질랜드 성폭력 인권운동가 루이스 니콜라스는 현지언론에 "그(피해자)에게 사과 같은 것을 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가 25일 국회에서 열렸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가운데)이 업무보고를 마친 뒤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종건 외교부1차관, 이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오종택 기자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가 25일 국회에서 열렸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가운데)이 업무보고를 마친 뒤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종건 외교부1차관, 이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오종택 기자

한편, 이날 최종건 신임 외교부 1차관은 취임 후 처음으로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은 최 차관이 지난 17일 출근 도중 "한미워킹그룹 등 많은 현안을 들여다보겠다"고 한 발언을 문제 삼았다. 그는 "한미워킹그룹에 문제가 있냐"고 물으며 "청와대에 계셨던 분이 차관으로 와서 상급자인 장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들여다보겠다고 하는 것은 장관을 무시하는 처사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최 차관은 "보도가 그렇게 나갔으나, 외교부에 왔으니 많은 현안을 들여다보겠다고 한 것일 뿐, 한미워킹그룹 하나만을 들여다본다고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유정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