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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정호의 시시각각

사이비 햇볕정책 3.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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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남정호 논설위원

남정호 논설위원

국내 언론엔 거의 안 나왔지만 최근 해외에서 대북방송 문제가 적잖은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지난 11일 당국이 대북방송을 막을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 탓이다. 이날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라디오 방송을 문제 삼으면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것처럼 똑같이 대응할 거냐’는 외신의 질문에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북 단체의 표현의 자유, 북한 인권 증진 외에 한국 사회 다른 사람들의 가치와 이해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국제인권단체는 물론 미국 국무부까지 “독립적 정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접근을 늘리겠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화들짝 놀란 통일부가 “대북방송 제한을 검토한 적이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현 정권의 속내를 여실히 보여준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당국, 대북방송 금지 가능성 시사 #북한 변화의 필수조건은 외부 정보 #맹목적 남북 교류, 김정은 독재 도와

현 정부의 대북 기조인 ‘평화 프로세스’는 여러모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빼닮았다. 실제로 2017년 8월 김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자신이 햇볕정책을 잇겠다는 뜻을 밝힌 적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슷한 대북정책을 구사했던 터라 현 정권의 대북 정책은 ‘햇볕정책 3.0’쯤 되는 셈이다.

옛 서독의 ‘동방정책(Ostpolitik)’에 뿌리를 둔 햇볕정책은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나름의 논리적 완결성을 지녔다. ‘통독의 설계사’ 에곤 바르가 주창했던 ‘접근을 통한 평화’ 정책으로 교류를 넓히고, 이를 통해 북한 내부를 변화시킴으로써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논리였다. 동독이든, 북한이든 화석화된 공산 사회를 바꾸기 위해 가장 절실한 건 외부 세계의 신선한 정보다. 자신들이 사는 공산 독재체제가 얼마나 그릇됐는지 깨달아야 주민 내부로부터 변화의 요구가 솟구칠 게 아닌가. 1989년 동독 붕괴의 최대 원인이 자유로운 서독 방송 시청 때문이란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동독 정부가 서독 전파의 월경(越境)을 눈감아 준 건 여러 이유 때문이었다. 간단한 장치만 있으면 시청이 워낙 쉬웠던 탓도 있었지만 서방세계의 노력도 한몫했다. 70년대 초 데탕트 분위기가 무르익자 유럽 내 동서 진영은 냉전 종식을 위한 역사적인 헬싱키협정을 맺는다. 이때 서방 측은 끈질긴 협상 끝에 인권 보호와 함께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을 보장한다는 조항을 협정 내에 넣는다. 협정 참여국 동독으로서는 서독 방송을 용인해야 했던 것이다. 이 덕에 독일 정치학자 쿠르트 헤세가 표현했듯, “저녁만 되면 독일은 전파에 의한 통일이 이뤄졌다.”

북한 민주화든, 평화통일이든 현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가 결실을 보려면 북한 내 변화를 끌어내야 한다. 여기엔 신선한 외부 정보를 공급하는 게 필수다. 그렇지 않고 교류라는 탈을 쓴 맹목적인 북한 지원에만 매달리면 북한 독재 정권에 인공호흡기를 달아 주는 꼴이 된다. 대북 전단 살포 금지에 이어 대북방송 제한이 바로 그런 악수다.

최근 조사 결과 북한 주민 중 30% 이상이 미 정부 산하 ‘미국의 소리(VOA)’ ‘자유아시아방송(FRA)’과 함께 탈북민 단체의 ‘국민통일방송’ 등을 듣는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많은 탈북민이 대북방송을 듣고 북한 탈출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렇듯 소중한 대북방송을 추가하진 못할망정 금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지난해 6월 북유럽 순방에 나섰던 문 대통령은 핀란드에 들러 여러 차례 헬싱키협정을 입에 올렸다. 그때마다 그는 헬싱키협정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많은 교훈을 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정작 배웠어야 할 핵심을 놓쳤다. 바로 외부 정보가 북한 내로 자유롭게 흘러야 평화적 통일이 온다는 교훈이었다.

현 정부는 이를 도모하기는커녕 대북 전단 살포 금지 등 역행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이 요구한다고 행여 대북방송까지 막으려 한다면 ‘사이비 햇볕정책 3.0’이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