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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부담 늘려 의보재정 살린다?

중앙일보

입력

보건복지부가 어제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안정 종합대책은 한마디로 지역의보에 대한 정부 지원을 50%까지 늘리고 제도개선을 추진할테니 국민도 돈을 더 내라는 것이다.

종합대책은 7월부터 소액진료 본인 부담금을 인상하고 내년부터 매년 9% 가량씩 보험료를 올려 2006년까지 건전재정을 이루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올해엔 보험료를 올리지 않는 대신 지역의보에 대한 국고 지원을 50%로 늘리고 부족 자금 1조1천2백여억원을 외부 금융권에서 차입하겠다는 것이다.

2개월여 동안 마련한 정부 대책엔 긍정적인 내용들도 포함돼 있다. 큰 병에 걸렸을 때 본인 부담을 줄여주기로 한 것이나 노령화 사회를 앞두고 희망자에 한해 가입하는 노인 요양보험을 도입키로 한 것 등은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또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키로 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으며, 건강보험증의 전자카드화나 전자문서교환(EDI)청구 확대는 보험관리의 투명성을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복지부는 의료계.약계.제약업계 등 어느 한쪽의 큰 희생 없이 국민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원칙에서 이번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외래 소액 환자(의원 1만5천원.약국 1만원 이하)의 본인 부담금(의원 2천2백원.약국 1천원)을 36%와 50%씩 올린 데다 내년부터 해마다 9% 가량의 보험료 인상이 예상돼 있어 국민 부담만 가중시켰다.

이는 정부가 의료계의 반발을 의식해 의보수가 등엔 손을 대지 못한 채 수입 증대 방안을 마련한 결과다. 더욱이 2003년부터는 환자가 총 진료비와 약제비의 30%를 부담하는 정률제로 바뀌게 돼 감기 등 가벼운 질병으로 의원을 찾는 환자들의 본인 부담금은 두배로 늘어나게 된다.

특별법을 제정해 국고 지원을 50%로 못박는다는 것도 제대로 실현될지 의문이다. 당장 올해 지원해야 할 1조4천억원을 놓고서도 예산당국은 추경예산 잔여분(1조5천억원)을 모두 투입할 수는 없다며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고 한다.

궁여지책으로 담배에 부과하는 건강증진부담금을 대폭 올리려다 보험재정 부담을 담배 소비자에게 전가하려 한다는 명분론에 밀려 검토입장으로 후퇴했다.

또 급여지출구조 개선과 약제비 절감 등 20가지의 단기 대책을 통해 연간 2조5천억원을 절감하고 2006년까지 재정안정을 이루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역시 낙관할 수만은 없다. 경제상황 등 외부 여건과도 직결돼 있기 때문에 국민부담은 확실히 올려놓고 주변 변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을 경우 또 한차례 의보 재정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의약분업 시행의 본래 취지는 의약품 오.남용과 약화(藥禍)를 막자는 것이다. 시행 1년 만에 효과를 논할 수 있느냐는 이론도 있지만 분업 이전에 비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국민 부담과 불편만 늘어난 채 의약분업은 빈 껍데기만 남아 있는 셈이다.

정부는 명분에 얽매여 땜질식 처방만 내놓을 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을 안정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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