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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내는 청년, 집 있는 친구와 소득 격차 갈수록 눈덩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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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호 07면

‘월세 소작농’ 안 된다

주택을 더 많은 사람이 소유할수록 정부와 대자본가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드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진은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아파트 단지. [뉴시스]

주택을 더 많은 사람이 소유할수록 정부와 대자본가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드는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사진은 재건축을 추진 중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아파트 단지. [뉴시스]

자본주의 경제에는 부동산과 동산 두 가지 자본의 날개가 있다.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애써도 한 개의 날개로만 날려고 하는 것과 같다. 청년들의 부동산 날개가 잘렸으니, 그들에게는 비트코인과 동학 개미 주식만이 탈출구다.

정부 정책 월세 전환에 목표 둔 듯 #부동산은 권력, 나눌수록 정의로워 #세종시로 수도 옮겨도 이사 안 해 #서울 집값 잡는 데 큰 도움 안 될 것

모든 국민이 한 번에 주택을 소유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경계부의 사람들이다. 주택을 소유할 가능성이 있는 경계부 사람들이 더 많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게끔 정책을 만들면 된다. 주택 소유자와 무주택자의 경계선을 위로 올라가게 해서 더 많은 사람이 월세로 살게 할 것이냐, 반대로 밑으로 내려가게 해서 더 많은 사람이 내 집을 갖게 할 것이냐의 문제다. 그럼 어떻게 집값을 떨어뜨려서 주택을 소유하게 할까? 공급을 늘리면 된다.

그런데 각종 정책은 국민을 월세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는 듯하다. 청년 주택 정책은 최소한의 원룸을 지어 월세로 살게 해 주면서 생색을 낸다. 월세로 살던 청년은 장년이 되었을 때 집값이 올라서 주택구매를 포기할 것이다.

지난 50년간 국민 1인당 점유하는 주거의 실내면적은 증가했다. 냉장고와 가스레인지는 커졌고, 방마다 침대가 들어가고 식탁, 옷, 신발이 늘어났다. 물건이 많아지면서 좁아진 집은 발코니 확장으로 커버했다. 그것도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맞는 수준의 발코니도 있고 1인당 점유면적이 적절한 시장이 원하는 아파트를 개발해야 한다. 우리는 지난 20년간 도시와 주거를 업그레이드하는 우리 세대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수차례의 양적 완화를 통해서 통화량이 엄청나게 늘었다. 부동산은 유한하고 돈이 배로 늘어나면 유한 자산의 가격은 배로 치솟는다. 금값이 뛰는 이유와 똑같은 단순 산수다. 세종시를 수도로 만들고 지방 혁신도시를 조성하고 그린벨트를 풀어서 주택을 공급하면 나아질까? 우리나라 국토는 좁아서 세종시를 기차로 37분 만에 갈 수 있다. 뉴저지에서 뉴욕으로 출근하는 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과연 서울 집을 팔고 세종시로 이사할까? 그 답은 ‘아니요’라는 것을 이미 청와대 공무원들이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 국민은 이제 카페, 공연, 전시 같은 문화생활을 원한다. 모여서 살아야 배달도 잘되고 편리하다. 부동산은 주변 관계가 많을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마치 인터넷 플랫폼 비즈니스와 같다. 덴마크 건축가 얀 겔의 실험에 의하면 꽃을 보는 벤치보다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벤치에 10배나 더 많은 사람이 앉았다. 사람은 사람에 끌린다. 그의 연구는 사람들은 시골보다는 도시로 모여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집단에 속했을 때 생존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아는 사피엔스의 본능에 따라 인구 밀도가 높으면 경제적 기회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수도를 지방의 세종시로 옮긴다고 서울 집값이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서울의 국제적 경쟁력만 약화할 뿐이다.

토지주택공사(LH)의 업무도 바뀌어야 한다. 지난 50년간 녹지를 택지로 만드는 일을 했다면 이제는 반대로 택지를 녹지로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린벨트에 비닐하우스밖에 없으면 비닐하우스를 없애고 나무 심는 일을 해야 한다.

인구노령화로 소멸하는 시골 마을을 아파트 단지로 바꿀 생각 말고 콤팩트시티를 만들고 자연녹지로 회복시킬 생각을 해야 한다. 도시화가 91%인 우리나라는 더는 택지가 필요 없다. 대신 기존의 도시를 재정비해야 한다.

권력은 분산할수록 좋은 것이다. 돈은 권력이다. 부동산 자산은 권력이다. 부동산이 정부나 대자본가에 집중되지 않고 더 많은 사람이 나누어서 소유할 수 있는 곳이 정의로운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내 아이를 위해서 거대 권력을 가진 정치가가 착하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부동산 자산이 나누어진 사회를 물려주고 싶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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