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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1주택자 “재산세 4년새 두 배, 연금 두 달치보다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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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4일 독자의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 증세 4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한 날이다. e메일에는 소시민의 고민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2016년부터 납부한 재산세 고지서 내역과 함께였다. 서울 양천구 신정동의 목동신시가지 아파트(전용면적 70㎡)에 사는 1주택자 이상진(66·가명)씨의 얘기다. 이씨가 보낸 e메일을 소개한다. 이씨의 요청으로 가명을 사용했다.

66세 소시민이 보낸 e메일 #재산세가 무섭습니다 #한곳에 오래 산 죄밖에 없는데 #세금 내기 위해 이 집 팔까요 #근처 사는 손주들도 봐주는데 #3대 주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 #연금은 그대로인데 세금은 뛰고 #정부는 이 돈 거둬 뭘 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저는 목동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직장 은퇴자입니다. 1가구 1주택자입니다. 23년 전인 1997년에 산 복도식 아파트입니다. 최근 올해 재산세 고지서 1기분을 받아 들고 막막한 마음에 이렇게 메일을 쓰게 됐습니다. 84만8000원이 청구돼 있더군요. 9월에 또 그만큼의 액수가 적힌 고지서가 날아오겠죠. 2016년 7월과 9월 각각 42만4000원씩, 한 해 84만8000원의 재산세를 냈는데 4년 만인 올해 재산세가 딱 배로 올랐습니다. 집값도 오른 데다 정부가 공시가격을 계속 올려 지난해부터 세 부담 상한인 30%까지 오른 고지서가 날아옵니다.

저는 은퇴 생활자입니다. 제 월수입은 70만원의 국민연금이 전부입니다. 은행원으로 20년을 살다 2000년 47세에 일찍 퇴직하고 만 55세에 앞당겨 수령하는 탓에 연금액이 적습니다. 아내가 초등학교 등교 차량 도우미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조금 보태고,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를 대신해 22개월 된 손주를 돌보며 받는 용돈으로 근근이 삽니다.

재산세가 무섭습니다. 한 해 재산세가 제 두 달 치 연금보다 많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오르면 저와 아내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곳에 오래 산 죄밖에 없는데, 세금을 내기 위해 이 집을 팔아야 하나요. 서울 집값이 다 올랐는데 저는 어디로 이사를 해야 할까요. 아들과 딸이 손주들을 맡기느라 제 집 가까운 곳에 삽니다. 결국 삼대의 주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집은 경기도에 살다 서울에서 마련한 첫 집입니다. 초등학생이던 두 아이가 여기에서 쭉 자랐고, 결혼까지 해서 분가했습니다. 집을 장만했을 때 방이 3개라 저희 부부 방을 빼고 아이들에게 각각 방을 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집은 제게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 집을 전세로 주고 더 싼 전셋집으로 이사 가서 그 차액을 종잣돈 삼아 사업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비록 사업에 성공하지 못해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8년의 세월이 걸렸지만요. 우리 가족에게는 그런 역사가 담긴 집입니다.

저는 베이비붐 세대로 치열하게, 잡초처럼 살아왔습니다. 은행을 나와 대출연체 추심원으로, 전세계약사실확인서 받는 일도 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영리하지 못해 돈을 잘 모으지 못했습니다. 연금은 그대로인데 너무 오른 재산세 고지서를 받아 들고서 화가 나 이민을 해야 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정부는 서민에게 이렇게 많은 돈을 거둬서 무엇을 하는 건가요. 정말로 묻고 싶습니다.

1주택자 이상진씨가 납부한 재산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주택자 이상진씨가 납부한 재산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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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와 서울시에 따르면 이씨처럼 서울에서 전년보다 30% 오른 재산세 고지서를 받은 가구는 올해 57만6294가구였다. 2017년(4만541가구)의 14배로 늘었다. 이들이 내야 하는 세금은 올해 8429억1858만원이다. 2017년(313억2450만원)의 27배가 됐다. “1주택자 증세는 없다”는 정부 주장과 달리 이씨 같은 1주택자의 세금 부담도 커졌다. 정부가 일방적인 생각만 강요하는 사회에서 1954년생 이상진씨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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