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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사 90억 지원하는 정부, 되레 여행사에 소송당한 사연

중앙일보

입력

문화체육관광부가 위기의 여행사를 살리겠다며 예산 90억원을 들인 ‘국내 여행 조기예약 할인상품 지원사업’이 소송을 당했다. 그것도 ‘사업 수혜자’라 할 수 있는 여행사가 사업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무슨 일일까. 주요 쟁점을 정리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침체된 여행업계를 돕고 가을철 국내여행 활성화를 위해 조기예약 할인 사업을 벌인다.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에서 발열체크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 [뉴스1]

문화체육관광부가 침체된 여행업계를 돕고 가을철 국내여행 활성화를 위해 조기예약 할인 사업을 벌인다. 김포공항 국내선 청사에서 발열체크를 받기 위해 대기 중인 사람들. [뉴스1]

최대 9만원 지원  

지원사업은 한국여행업협회(KATA)가 주관한다. 문체부가 위촉했다. 사업은 다음의 과정을 밟는다. 국민이 30% 할인된 가격에 여행상품을 예약할 수 있는 이벤트 사이트가 이달 말 오픈한다.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여행상품은 별도의 공모로 선정한다. 모두 1000개가 넘는 상품이 선정될 것으로 문체부는 예상한다. 여행사는 이 사이트에서 최대 6개까지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

사이트에서 국민이 할인 가격으로 상품을 사면 정상 가격과 차액이 발생한다. 이 차액을 개별 상품 1인 기준 최대 9만원까지 지원한다. 최대 6만원은 문체부 지원금으로, 나머지 최대 3만원은 지자체 지원금과 여행사 자체 할인액으로 보전해준다. 문체부는 이 사업으로 최대 15만 명이 할인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한다.

협회의 자격

7월 21일 중소여행사 ‘이엘’과 ‘데이아웃’이 바로 이 사업을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두 여행사가 가장 문제 삼은 것이 사업 주관사 KATA의 자격이다. ①문체부가 법적 근거 없이 사업을 KATA에 맡겼으며 ②KATA는 전국 여행사를 대표하지 못하는 일개 사업자 단체에 불과하며 ③이번 사업이 KATA 회원사에만 유리해 불공정하다는 게 소송 제기의 주요 근거다. 이엘 유일한 대표는 “전국 여행사는 약 2만 개인데, KATA는 회원사가 619개에 불과하다”며 “문체부는 KATA가 협회 인가 조건을 충족하지도 못했는데도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소여행사 '이엘'과 '데이아웃'이 7월 21일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문체부가 추진 중인 '국내여행 조기예약 할인상품' 사업이 불공정하니 취소해달라는 내용이다. 두 여행사는 소장에서 '우수여행사'에 가점을 부여하면 KATA의 핵심 회원사인 서울 소재 대형여행사만 혜택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최승표 기자

중소여행사 '이엘'과 '데이아웃'이 7월 21일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문체부가 추진 중인 '국내여행 조기예약 할인상품' 사업이 불공정하니 취소해달라는 내용이다. 두 여행사는 소장에서 '우수여행사'에 가점을 부여하면 KATA의 핵심 회원사인 서울 소재 대형여행사만 혜택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최승표 기자

문체부 입장은 다르다. 문체부는 3일 KATA에 사업을 위탁한 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해명자료도 냈다. 문체부 신용식 관광기반과장은 “KATA는 관광진흥법에 따라 문체부로부터 승인받은 여행업 관련 유일한 업종별 협회”라며 “1999년부터 다양한 공공사업을 수행해왔다”고 설명했다. KATA 최창우 국장은 “8월 4일 현재 KATA 회원사는 모두 1229개”라며 “619개는 2018년 회비를 완납해 회장 투표권을 가졌던 회원사 숫자”라고 해명했다. 그래도 KATA 회원사가 전체 여행사의 10%가 안 되는 것은 사실이다.

불공정 시비

소송을 제기한 여행사들은 공모 기준 자체가 지방의 중소여행사에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사업 공고문에 명시된 ‘우수여행사 수상 실적’ ‘여행자보험 가입 등 안전대비’ ‘지방 소재 여행사와의 협업’ 등의 공모 기준이 지방의 중소여행사보다 매출과 실적이 큰 서울의 대형여행사에 유리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결국 KATA의 핵심 회원사인 서울의 대형 여행사만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여행사 이엘과 데이아웃이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한 소장의 내용. 국내여행 조기예약 할인상품 지원사업이 지역의 중소여행사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주장이다. 최승표 기자

여행사 이엘과 데이아웃이 서울행정법원에 접수한 소장의 내용. 국내여행 조기예약 할인상품 지원사업이 지역의 중소여행사에는 '그림의 떡'이라는 주장이다. 최승표 기자

KATA와 문체부는 조목조목 반박한다. KATA 서대훈 부장은 “여행업 등록 2년 이상인 업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회원사를 우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우수여행사는 KATA 선정 업체가 아니라 지자체 선정 업체 혹은 각종 수상경력을 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체부 최보근 관광국장도 “외부 전문가가 심사하기 때문에 KATA는 일절 관여하지 못한다”며 “공정한 심사를 통해 지역 여행사도 사업에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문체부의 해명에도 원고 측 변호사는 사업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입장이다. 법무법인 현의 박지훈 변호사는 “심사 기준이 서울 소재 대기업 여행사에 유리하도록 구성됐을 뿐 아니라 심사 과정과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며 “지방 중소여행사엔 그림의 떡”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혜택은?

소송과는 별개로 사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관광업계 의견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여행사의 한 임원은 “개별 여행상품으로 보면 할인액이 커 여행사에 돌아가는 수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최대 6개까지 상품을 지원할 수 있다는데 우리 회사는 그 정도까지 지원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 사업은 ‘선 할인 후 지원’ 방식이다. 중소여행사뿐 아니라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대형여행사도 자금 유통이 쉽지 않은 형편이다. 한 중소여행사 대표는 “월세도 못 내는 여행사가 속출하는 상황”이라며 “차라리 재난지원금처럼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더 낫다”고 말했다.

발상의 전환

올해 2월 1일부터 8월 4일까지 여행사 443곳이 문을 닫았다. 2018년 같은 기간에는 여행사 491곳, 2018년에는 469곳이 폐업했다(행정안전부). 사상 최악의 위기라는데 여행사 생존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왜일까.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금이 폐업을 늦추고 있어서다. 6개월째 일이 없어도 여행사는 좀처럼 망하지 않는다.

최근 5년간 여행사 폐업 현황 [자료 행정안전부]

최근 5년간 여행사 폐업 현황 [자료 행정안전부]

코로나19는 여행 생태계의 체질 전환을 요구한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이동하거나 식사하거나 한 공간에 머무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세상이 왔다. 과거와 같은 패키지여행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그러나 정부 지원사업은 여전히 예산 나눠주기에 맞춰져 있다. 이번 지원사업 심사항목에도 ‘언택트 관광지 발굴’ ‘언택트 여정 개발’이 빠진 건 아쉽다. 강우현 남이섬 부회장의 일갈을 옮긴다.

“여행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 여행으로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행업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하루하루 연명만 하려는 여행업계도 한심하고, 예산 몇 푼으로 눈앞의 위기만 넘기려는 정부도 딱하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손민호·최승표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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