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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람사전

식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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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철 카피라이터

정철 카피라이터

화려하지 않다. 요란하지 않다. 달콤하지 않다. 가장 무표정하고 무덤덤한 빵이 식빵이다. 그러나 누구보다 친구가 많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나란히 서서 서로 어깨 기대고 몸 비비는 진짜 친구가 많다. 화려함이, 요란함이, 달콤함이 친구를 만들어주는 건 아니다.

『사람사전』은 ‘식빵’을 이렇게 풀었다. 식빵은 운이 좋다. 곁에 비슷하게 생긴 녀석들이 여럿 있으니까. 녀석들과 밀착할 수 있으니까. 밀착이 친밀을 주니까. 친밀이 친구를 주니까.

사람사전 8/5

사람사전 8/5

누군가 묻는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우린 어떤 대답을 갖고 있을까. 공부하세요. 성공하면 좋은 친구를 많이 만날 수 있어요. 또는, 돈을 버세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건 없어요. 이런 대답이 대답일 수 있을까. 이 물음엔 정답이 없을지 모르지만 정답에 가장 가까운 답은 이런 대답 아닐까. 먼저 ‘좋은’이라는 말을 걷어내세요.

누구나 식빵처럼 밀착의 시간을 거치면 스르르, 조금씩, 어느새 친구가 된다. 그러나 밀착 이전에 ‘좋은’과 ‘나쁜’을 나누려는 마음이 먼저 작용하면 좋은 친구는 없다. 그냥 친구도 없다. 어쩌면 친구를 가려서 사귀려는 마음이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나는 친구를 소재로 한 글을 꽤 썼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며 오늘 글을 맺을까 한다. 나 혼자 내 대표작이라고 주장하는 글. 내 글 딱 하나만 내놓으라 하면 주저 없이 내미는 글. 딱 두 줄짜리 짧은 글. 제목은, 인생.

친구가 있으세요? 그럼 됐습니다.

정철 카피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