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학교 안 다녀요" 엄마의 용기에 아이 표정 밝아져

중앙일보

입력 2020.08.03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28)

우리 집 두 아이는 학교를 나와 홈스쿨링을 했다. 첫째는 중학교 1학년 때, 둘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다. 두 아이가 학교를 그만두기 전까지는, 학생이 학교를 안 다니는 건 생각도 못 했던 일이다.

낮에 아이들과 식당에라도 가면 ‘왜 학교에 안 갔냐?’ ‘오늘이 개교기념일이냐?’ 물어봤다. 처음엔 머뭇거리거나 멋쩍은 웃음으로 대충 넘어갔는데 아이들이 내 반응을 살피고 있다는 걸 안 후부터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예, 학교 안 다녀요. 집에서 공부해요!” 그걸 밝히는 순간 또 다른 시선이 비수처럼 꽂혔다. 뭔가 문제 있는 아이, 사고 친 아이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따갑고 아팠다. 그 통증이 오래갔다. 차라리 말을 하지 말 걸, 후회한 적도 많았다.

유채꽃 플라자에서 은지랑 어진이. 둘째 어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 두고 EBS 교재로 혼자 공부했다. 은지의 영향으로 사회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올해 사회학과에 입학한 새내기다. 검정고시 공부하는 아이들의 멘토 역할까지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사진 배은희]

유채꽃 플라자에서 은지랑 어진이. 둘째 어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 두고 EBS 교재로 혼자 공부했다. 은지의 영향으로 사회학에 관심을 갖게 됐고, 올해 사회학과에 입학한 새내기다. 검정고시 공부하는 아이들의 멘토 역할까지 하며 바쁘게 지내고 있다. [사진 배은희]

하지만 그때마다 생각을 뒤집었다. 아이들이 엄마인 내 반응을 살피고 있으니까. 가장 민감한 촉수로 내 호흡과 억양, 표정과 눈짓을 모두 읽고 있으니까. 나는 아이들의 엄마니까.

“예, 학교에 안 다녀요. 집에서 공부해요.” 내가 정말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때 아이들 표정이 밝아졌다. 타인의 반응은 그다음이었다. 내가 믿어주고 기다려 주기로 마음먹으니까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진로를 찾기 시작했다.

위탁가족이 된 후에도 그랬다. 처음엔 우리가 위탁가족인 걸 두루뭉술 넘기기도 하고, 혈연관계인 것처럼 연기도 했다. 혹여나 은지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상처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먼저 느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은지는 민감한 촉수로 그런 내 호흡과 억양, 표정과 눈짓의 변화를 읽고 있을 것이다. 두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오일장에서 토끼에게 인사하는 은지. 위탁가족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있지만, 이것을 통해 은지가 더 깊고 넓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게 은지의 강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사진 배은희]

오일장에서 토끼에게 인사하는 은지. 위탁가족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있지만, 이것을 통해 은지가 더 깊고 넓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게 은지의 강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사진 배은희]

다시 용기를 내야 했다. 첫째, 둘째가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을 때처럼. 어떤 오해를 받더라도 내가 믿어주고 받아주면서 제 길을 찾도록 해야 했다. 은지를 위해 다시 용기를 냈다.

“예, 우린 위탁가족이에요.” 여전히 밝히고 싶지 않지만 생각을 뒤집고 용기를 쥐어짜며 말한다. 언젠가는 전화위복이 될 거라고 믿으면서. 언젠가는 입양가족처럼 기대의 대상이 될 거라고 소망하면서.

아이는 부모를 보고 자란다. 은지는 내 호흡과 억양, 표정과 눈짓까지 세세히 읽고 있다. 그래서 ‘내가’ 달라져야 한다. 더 용기를 내고, 인정하고, 믿어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그럼 은지가 제 길을 찾을 테니까.

첫째 아이는 학교를 그만둔 다음 교육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국제 교육 정책’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둘째 아이는 사회학과 새내기다. 은지를 돌보면서 자라서 그런지 나중에 아동·청소년 관련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지금은 학교 공부도 하면서 검정고시 아이들 공부까지 봐주고 있다.

은지도 위탁가족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있지만, 이것을 통해 더 깊고 넓은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이게 은지의 강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바라기는 은지가 밤새도록 해도 가슴 뛰는 일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외된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리고, 약자의 편에 서는 ‘실력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험한 산길만 가는 인생도 없고, 곧은 평지만 가는 인생도 없다. 구불구불 올라갔다 내려가는 게 인생이고, 꺾이고, 휘몰아치는 게 인생이다. 세상 어디에도 한결같은 인생은 없다.

위탁가족도 있고, 입양가족도 있다. 한부모 가족도 있고, 다문화 가족도 있다. 다양한 가족들이 다양한 인생을 사는 게 자연스러운 것 아닐까.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위탁가족인 걸 밝히고 지금 상황 그대로를 이야기 하는 건, 이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고치 속에서 꿈틀대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 듯, 은지는 이 시간을 견디고 결국 아름다운 비상을 할 테니까. [사진 배은희]

위탁가족인 걸 밝히고 지금 상황 그대로를 이야기 하는 건, 이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고치 속에서 꿈틀대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 듯, 은지는 이 시간을 견디고 결국 아름다운 비상을 할 테니까. [사진 배은희]

어떤 게 정답이고, 어떤 게 오답일까? 우리가 위탁가족인 걸 밝히고 지금 상황 그대로를 이야기하는 건, 이게 우리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고치 속에서 꿈틀대던 애벌레가 나비가 되어 날아가듯, 은지는 결국 아름다운 비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은지는 아름답고 강한 날갯짓을 할 거다. 오늘도 그 희망을 본다.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사정(질병·가출·이혼·학대·사망 등)으로 친가정에서 지낼 수 없는 자녀를 복지시설에 보내지 않고, 일반 가정에 맡겨 양육하는 제도다.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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