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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투표 좌절 시도”…트럼프는 우편투표 계속 트집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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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7호 02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적십자본부 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그는 이날 ‘대선 연기’를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적십자본부 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그는 이날 ‘대선 연기’를 언급해 논란을 빚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느닷없이 꺼내 든 ‘대선 연기론’으로 워싱턴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오전 트위터에 “우편투표가 광범위하게 도입될 경우 이번 대선은 역사상 가장 부정확하고 사기 치는 선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제대로, 안심하고, 안전하게 투표할 수 있을 때까지 선거를 연기???”라고 적었다. 오는 11월 3일로 예정된 대선 연기를 검토하자는 뉘앙스의 발언이다.

“우편투표 강행 땐 승자 모를 수도” #부정행위, 개표 지연될 가능성 주장 #유권자 77%, 1억8000만 명 가능 #젊은층 참여 많아 민주당 적극적 #대통령 권한 밖 알면서도 거론 #결과 이의 제기할 명분 쌓기 분석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9시간 만에 이를 철회했지만 파장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는 이날 오후 백악관 브리핑에서 “나는 선거를 미루고 싶지 않다. 선거를 (예정대로) 하고 싶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면서도 “선거 결과를 빨리 알고 싶다. 결과를 듣기까지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을 기다리고 싶지 않다”며 “우편투표를 강행할 경우 선거가 끝난 뒤에도 누가 이겼는지 모를 수 있다. 심지어 영원히 승자를 모를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우편투표 확대로 부정행위 우려가 커지고 투표용지 관리 및 집계가 늦어져 결과 발표가 지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연기 언급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현직 대통령이 대선 연기 가능성을 거론한 게 처음인 데다 대선 연기 권한은 대통령이 아닌 의회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온종일 우편투표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그는 오후 브리핑에서 “여러분에게 설명하고 싶다”며 준비해온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의 우편투표 관련 기사들 제목을 읽었다. 그러면서 “캘리포니아주는 우편투표 용지를 수백만 건 발송한다는데 그게 다 어디로 가느냐” “투표용지가 없어질 수 있다”는 등의 주장을 폈다.

또 “우편투표는 매우 불공정하고 재앙이며 최악의 사기다. 우리가 우편투표를 강행하면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아침 트윗에선 “우편투표는 이미 재앙이라는 게 증명됐다”며 “민주당은 외세가 투표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지만 우편투표야말로 외세가 미국 대선에 개입하는 손쉬운 방법”이라고 했다.

우편투표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지속돼 왔다. 다른 지역 투표소에 가서 직접 기표하는 부재자 투표와 달리, 우편투표는 집에서 미리 받은 투표용지에 기표한 뒤 다시 봉투에 넣어 선거 당일까지 해당 지역 개표소로 부치는 방식이다.

현재 우편투표를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주는 워싱턴주 등 5개 곳. 이들 지역의 유권자들은 직접 투표를 하거나 우편투표 중 선택할 수 있다. 최근 캘리포니아 등 다른 주들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이 제도를 도입해 우편투표가 가능한 유권자는 전체의 77%인 약 1억8000만 명에 달한다.

문제는 우편투표 확대로 공화·민주 양당의 득표 셈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민주당 측은 흑인 등 유색 인종과 젊은층의 투표 참여가 높아져 득표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우편투표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불리해진 공화당은 투표 부정이나 보안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존 루이스 전 하원의원 장례식에서 연설 중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존 루이스 전 하원의원 장례식에서 연설 중인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현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우편투표로 인한 광범위한 투표 부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망한 사람을 대신해 투표하거나 중복 투표를 하는 경우가 극소수에 불과해 선거 결과에 영향이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표가 지연될 가능성은 있다. 발송과 접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대선 당일 개표 완료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도 우편투표로 인해 결과 발표가 지연됐다.

워싱턴 정가에선 트럼프가 대통령 권한으로는 선거일을 연기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를 트위터를 통해 거론한 것은 대선 연기를 실제로 추진하기보다는 우편투표를 포함한 대선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우편투표 확대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있다.

폭스뉴스는 “선거 결과에 의구심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결과를 놓고 다툴 경우에 대비해 사전 정지 작업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대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는 지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I’m not a good loser)”고 답해 대선 불복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연기론에 대해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소속 제리 내들러 하원 법사위원장은 “분명히 해두자. 선거일 변경 권한은 의회에 있다”며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이 선거일 연기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공화당 소속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도 “남북전쟁과 대공황을 포함해 미국 역사에서 연방 선거일이 미뤄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비판에 가세했다. 그는 이날 애틀랜타에서 열린 존 루이스 전 하원의원 장례식에서 “지금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순간에도 우리의 투표를 좌절시키려는 권력자들이 있다”고 꼬집었다.

워싱턴=박현영·김필규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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