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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독 미군 감축에 "러시아에 선물" 독일 안팎 반발…메르켈은 '침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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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미국이 끝내 주독 미군 감축을 결정하면서 독일 안팎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어차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관계가 개선되기 어려운 만큼 11월 대선 결과를 지켜보자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나토 동맹관계까지 약화 초래" 우려 #미 의회 견제·11월 대선 변수 기대도 #'미국 없는' 유럽군 논의 촉발할지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8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외교 현안에서 마찰을 빚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고 메르켈 총리가 화답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해 8월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인사하고 있다. 두 사람은 외교 현안에서 마찰을 빚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고 메르켈 총리가 화답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에 선물 안겨 준 셈"  

29일(현지시간) 마크 에스퍼국방장관은 독일에 주둔한 미군 병력 3만6000명 가운데 1만2000명을 빼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결정은 독일과 사전조율 없이 나왔다. 그동안 미국은 주독 미군을 러시아 견제와 중동·아프리카를 겨냥한 군사전략에 활용해왔다.

독일 주요 정치인과 언론은 주독 미군 감축 소식에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메르켈 독일 총리의 측근인 노르베르트 뢰트겐 독일 의회 외교위원장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동맹관계가 끊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날 일간지 아우크스부르거알게마이네와의 인터뷰에서 "독일에는 미군의 유럽군사령부와 아프리카군사령부가 있는 등 미군의 중계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주독 미군이 철수한다면 앞으로 러시아나 중동의 군사갈등 속에서 미군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2017년 3월 독일 일레 하임의 육군 기지에 미군이 정렬한 모습. [AP=뉴시스]

2017년 3월 독일 일레 하임의 육군 기지에 미군이 정렬한 모습. [AP=뉴시스]

전 유럽주둔 미 육군사령관 벤 호지스도 "주독미군 감축은 러시아에 선물을 준 셈"이라며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호지스 전 사령관은 도이체벨레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은 미국의 유럽 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며 "유럽 내 병력을 이탈리아로 이동할 경우 미국의 방위비 지출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터 바이어 독일 정부 대서양관계 조정관은 미국의 주둔군 감축 방식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달 미국의 주독 미군 감축 구상을 언론을 통해서 접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 몇 주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찾으려 했지만 추가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며 "이제부터라도 투명한 절차를 통해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침묵

반면 메르켈 총리는 아직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난 6월 26일 쥐트도이체 차이퉁과 인터뷰에서 "미군의 독일 주둔은 독일과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뿐 아니라 미국의 이익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게 전부다.

당시 그는 "우리는 미국이 세계적 강대국으로 행동한다는 관념 속에서 성장했다. 미국이 스스로 그 역할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면, 우리는 지금 상황을 깊게 성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AP=연합뉴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 [AP=연합뉴스]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행정부와는 관계 개선을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언급도 나왔다. 독일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말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메르켈 총리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집권하는 동안은 미 정권과 관계 개선을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매체들도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11월 미국 대선 등 아직 변수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편에선 미국 의회의 견제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이날 "미국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을 무력화하거나 어렵게 만들 수 있다"면서 "11월 미국 대선 전에 결정되는 것은 어떤 것도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일방적인 주둔군 감축에 이른바 '유럽군' 논의가 다시 부상할 조짐도 보인다. '미국 없는, 유럽만의' 새로운 안보공동체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당초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프랑스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017년 '유럽 개입 구상(European Intervention Initiative·약칭 E2I)'을 제시하며 유럽 안보 독자노선을 주창해왔다. 오랫동안 미국에 방위를 의존해 온 독일은 신중한 입장이었지만 이번 사태로 여건이 크게 바뀌었다는 분석이다. 마르쿠스 카임 독일 국제안보연구소(SWP) 수석연구원은 최근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재선되면 유럽의 독자적인 안보구상 논의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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