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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대에도…WTO “패널설치” 수출규제 국제소송 시작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을 겨냥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정당한지를 가릴 국제 소송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9일 10시(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정례회의에서 회원국들이 일본 수출 제한 조치 분쟁을 다룰 패널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패널은 분쟁 심리를 담당할 임시 재판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WTO의 패널 설치 결정은 국제 소송 절차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의미다.

일본 반대에도 자동 패널 설치

WTO 로고. 연합뉴스

WTO 로고. 연합뉴스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 한국 정부는 WTO에 패널 설치를 처음 요청했지만 일본의 반대로 무산됐다. 한국 정부는 바로 두 번째 패널 설치를 요청했다. WTO 규정상 두 번째 요청부터는 모든 회원국이 거부하지 않는 한 패널이 설치된다. 한국 정부의 두 번째 요청에 일본은 반대 입장을 유지했지만, 그 외 다른 회원국 모두가 반대하진 않아 자동으로 패널 설치가 이뤄졌다.

판사 역할을 할 패널 위원은 총 3명으로 구성된다. 국제 소송을 다루는 만큼 한쪽 국가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사람이 위원으로 선정된다.

패널 설치를 요청한 한국이 WTO 사무국에 위원 선정 요건을 보내면 사무국에서 이에 맞는 후보군을 추린다. 후보군이 정해지면 한국과 일본의 의사를 각각 물어 선호를 조사한다. 양국 의사가 일치하는 위원은 자동으로 선정된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WTO 사무국에서 직권으로 위원을 정할 수도 있다.

패널 위원 구성이 끝나면 구두 심리 등 쟁송 절차에 들어간다. 최종 판정까지는 원칙적으로 10~13개월이 걸린다. 이 절차가 끝이 아니다. 판정 결과에 한국과 일본 중 어느 한쪽이 불복하면 상소도 가능하다. 상소하면 최종 상소 기구에서 다시 판정하는데 이때는 한국 대법원처럼 사실관계는 따지지 않고, 법리 적용 정당성만 검토한다. 원칙대로면 상소 기구 최종 판정까지는 4개월이 더 걸릴 수 있다.

법으로 수출규제 해결? 전문가들 "쉽지 않아"

지난해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작하면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뉴스1

지난해 일본이 수출규제를 시작하면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뉴스1

산업부는 이번 WTO 소송전에서 승리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부당함을 인정받고 통상문제도 풀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제 소송으로 꽉 막힌 한일 관계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치·외교적 문제가 걸려 있어서다. 미·중 무역 분쟁 등에서도 WTO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분쟁 절차 최종심에 해당하는 WTO 상소 기구는 사실상 마비 상태다.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WTO가 제어하지 못한다며 상소 기구 차기 재판 위원 선임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 위원이 공석이다 보니 상소 절차도 중단됐다. 이 때문에 산업부 내부에서는 통상 4개월 정도면 끝나는 상소 절차가 최소 1~2년 이상 걸릴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설사 상소 기구가 구성돼 최종 판단에서 한국이 이기더라도 일본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도 따져야 한다. 판정은 WTO가 내리지만, 그 의미를 해석하고 이행하는 것은 일본이 하기 때문이다.

만약 WTO가 일본 수출 규제가 부당하다고 판정해도 일본이 다른 형태로 규제 방식으로 바꾸며 버티기 전략에 돌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럴 경우 WTO 판정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따지기 위해 다시 지난한 쟁송 절차를 거쳐야 한다.

"지금이라도 외교적 해결 필요" 

이 때문에 법적 해결보다는 외교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특히 이번 수출 규제의 발단이 된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또 다른 통상 마찰을 계속 빚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다음 달 4일부터 법원이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절차에 들어가면 일본이 추가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은 비자 요건 강화, 금융제재 같은 추가 보복 수단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한다. 이런 보복을 실행한다면 그때마다 모든 것을 법적 소송으로 끌고 가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는 "과거 한국도 캐나다와 소고기 관련 분쟁 때문에 WTO 쟁송 절차에 돌입했지만, 막판에 양국이 합의로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면서 "어쨌든 외교적으로 일본과 갈등을 푸는 게 WTO에 제소한 지금으로써도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라고 말했다.

세종=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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