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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檢 수사 편의 위해 출국금지 조치 남용...제도개선 시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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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사진 JTBC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사진 JTBC

국가인권위원회가 검찰의 출국금지 조치 남용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며 법무부에 출국금지 심사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법무부 장관에게 출국금지·통지제외 심사가 실질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심사 절차와 방법을 개선하고, 검찰총장에게도 수사 편의를 위한 출국금지 남용을 막기 위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라고 권고했다고 28일 밝혔다.

인권위는 “출국금지 관련 업무가 연간 5만여 건에 달하지만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은 2명에 불과해 충분한 심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현재 법무부의 심사가 출국금지 남용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도까지 수사 목적의 출국금지 요청에 대한 법무부 승인율은 98% 이상이었다. 법무부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수사 목적의 통지 제외 요청 6036건을 모두 승인했다.

인권위의 이같은 판단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경찰관 A씨가 담당 검사와 수사관을 상대로 ‘출국금지 조치는 부당하다’며 진정을 낸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A씨 등 수사 대상자들에 대해 출국금지 및 통지 제외(출국금지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리지 않는 조치)를 법무부에 요청해 승인받았다. 한 달 뒤 A씨는 가족과 해외여행을 가려고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다가 뒤늦게 출국금지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A씨는 이에 ”검찰 수사에 성실히 임했고 도주 우려도 없음에도 부당하게 출국 금지돼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진정했다. 인권위는 “진정인이 해외로 도피할 우려가 있다고 볼 근거가 없고 이미 검찰에 출석해 장시간 조사받는 등 수사를 회피하지도 않았다”면서 “사회적 이목이 쏠린 중대 사건이라는 이유로 일률적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수사 관행은 용인될 수 없다”고 봤다.

또 인권위는 A씨에 대한 통지 제외 조치 역시 명확한 근거 없이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통지 제외 사유로 ‘수사 개시 사실이 알려질 경우 수사 회피 등 우려가 있다’고 했지만, 당시 A씨는 이미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서울중앙지검에도 A씨에 대한 출국금지·통지제외 요청에 관여한 직원들에 경고 조치를 내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직무 교육을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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