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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직장'의 추락···코로나 구조조정 1호 공기업은 마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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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마사회가 직원의 10% 이상을 감축하는 내용의 구조조정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과천 렛츠런파크 경마장에서 무관중 경마가 재개된 모습. 중앙포토

한국마사회가 직원의 10% 이상을 감축하는 내용의 구조조정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과천 렛츠런파크 경마장에서 무관중 경마가 재개된 모습. 중앙포토

한국마사회가 공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며 안정된 고용과 높은 임금을 상징했던 공기업에도 코로나19발 구조조정의 삭풍이 불어 닥치고 있다.

‘코로나 비상경영대책’ 보고서 입수 #“인원 10% 감축, 전 직원 무급휴직” #노조 반발하자 “아직 확정 아니다” #정규직 된 비정규직은 제외 논란

“현재 인원 10% 감축, 전 직원 무급휴직”

 28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마사회 임원회의 ‘비상경영대책’ 보고 자료에 따르면, 마사회는 8월 10일부터 31일까지 3주 동안 전 직원 무급휴직 실시를 결정했다. 명예퇴직·희망퇴직을 포함해 현재 인원의 10% 이상을 줄이고, 전 직종의 신입사원 채용을 중단한다는 내용이다.
이 기간에는 경마 사업도 중단하고 휴업에 들어간다.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를 계속하면서 적자가 쌓이자 출혈을 줄이기 위해서는 인력 구조조정 카드를 꺼낸 것이다. 또 무급휴직·휴업을 통해 직원 급여 삭감·반납 조치도 실시한다. 복리후생 비용은 전액 삭감할 방침이다.

한국마사회의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비상경영대책 보고’ 자료 일부 캡처. 임성빈 기자

한국마사회의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비상경영대책 보고’ 자료 일부 캡처. 임성빈 기자

 지난 주말 사측이 이러한 구조조정안을 확정하자, 노동조합은 즉각 반발했다. 마사회 노조는 입장문을 통해 “근로자의 동의가 없는 무급휴직은 불가하다는 점을 재차 확인해놓고 무급휴직 돌입을 감행하는 저의가 뭐냐”고 비판했다. 노조 반발에 마사회 측은 구조조정안을 확정한 것은 아니라며 한발 물러섰다. 마사회는 "관중 입장 재개 여부에 따라 노조와 경마유관단체와 협의를 통해 자구대책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조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코로나19로 올해 경마 수익이 전무한 데다 관중 입장을 재개하더라도 고객 수용 가능 규모는 전년 대비 2.5~10%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또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내년에도 긴축재정(올해 예산의 70% 수준)이 필요한데 마사회 측은 이를 위해서 올해 말까지 3500억원의 가용자금을 확보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마사회 내부에서는 최악의 경우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적자 전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정규직 전환 인원은 구조조정서 제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마사회 직원. 사진 한국마사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활동을 하고 있는 한국마사회 직원. 사진 한국마사회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 계획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에서 정규직화된 직원은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짧은 시간 일하는 이들까지 감축할 필요는 없다는 게 마사회의 설명이다. 그러나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로 문재인 정부의 정규직화 정책에 대한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정규직 전환 직원까지 정리하는 것은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마사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고 해서 구조조정 대상에서 빼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신입 사원 채용을 중단하기로 한 점을 감안하면 청년 취업 준비생만 역차별한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마사회는 시장 실패를 보완하는 공기업이 아니라 일반 사기업처럼 수익을 추구하는 곳(준시장형 공기업)"이라며 "경영상황이 안 좋아지면 당연히 전반적인 비용 절감과 원칙에 입각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돌파구는 온라인 경마?

지난달 과천 렛츠런파크 경마장에서 재개된 무관중 경마. 중앙포토

지난달 과천 렛츠런파크 경마장에서 재개된 무관중 경마. 중앙포토

 마사회가 구조조정까지 비상경영대책까지 마련한 것은 코로나19로 관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사회법상 경마는 반드시 '경마장 안'에서만 해야 한다. 관중을 받지 못하면 수익을 낼 방법이 없다. 마사회는 지난 5월 6일과 지난달 17일, 지난 16일에 관중 입장을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3차례 요청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코로나19 재확산 이유로 요청이 무산됐다. 28일에도 정부와 관중 허용을 논의하기로 했지만 미뤄졌다. 코로나19 확산 위험까지 무릅쓰며 사행산업을 지원해야 하냐는 반대 여론에 정부가 경마장 문은 쉽게 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중에 사활을 건 한국과 달리 외국은 온라인 경마로 대체 수익을 올린다. 오히려 코로나19 전파 우려에 관중 입장은 물론 경주 자체도 금지했다. 대신 한국의 경주 영상을 사서 온라인으로 경마를 하고 있다. 마사회 측에 따르면 지난달 19일 재개된 국내 무관중 132개 경주는 미국·영국·호주 등 7개 나라에 수출됐다. 경주 재개 2주차부터는 수출국을 8개로 늘렸다. 한국은 관중은 못 받으면서 경주만 하고 있지만, 외국은 한국의 경주 영상으로 경마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사회는 외국처럼 한국도 온라인 경마를 할 수 있게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사행산업 조장 우려에 적극적으로 나서길 꺼린다. 온라인 경마를 허용하면 경마가 무분별하게 퍼질 수 있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마사회 관계자는 "온라인 경마는 본인 인증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통제하기가 쉽다"고 반박한다. 말 산업 업계 관계자는 "상황이 좋을 때는 정부 정책에 공기업을 활용하면서 위기에는 뒷짐만 진다"며 "경마 산업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대책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임성빈·김남준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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