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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쓸이 시작한 싹쓰리 “실패 딛고 성장” vs “불공정 게임”

중앙일보

입력

25일 음악방송 ‘쇼! 음악중심’ 출근길에 선 싹쓰리. [사진 MBC]

25일 음악방송 ‘쇼! 음악중심’ 출근길에 선 싹쓰리. [사진 MBC]

‘다시 여기 바닷가’ vs ‘그 여름을 틀어줘’
MBC 예능 ‘놀면 뭐하니?’를 통해 결성된 혼성그룹 싹쓰리가 올여름 가요계를 싹쓸이하고 있다. 18일 공개된 데뷔곡으로 주요 음원 차트 정상을 차지한 데 이어 25일 공개된 두 번째 곡이 무서운 속도로 치고 올라오면서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 여기에 듀스 원곡을 커버한 ‘여름 안에서’와 비가 피처링한 지코의 ‘섬머 헤이트(Summer Hate)’, 이효리가 추천한 블루의 ‘다운타운 베이비(Downtown Baby)’를 더하면 프로그램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곡이 상위 10위권 내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놀면 뭐하니?’서 결성된 혼성그룹 #음원차트 1위 이어 음방도 1위 후보 #이효리·비 전작 부진 딛고 역량 발휘 #“석달간 홍보 효과 무시 못해” 비판도

처음부터 댄스 음악과 혼성그룹이 사라진 여름 시장을 노린 프로젝트였지만, 단순히 프로그램 효과로 치부하기엔 안팎의 파장도 상당하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격년제로 진행된 ‘무한도전’ 가요제에서도 ‘렛츠 댄스’(2009)나 ‘냉면’(2011) 등이 ‘쇼! 음악중심’ 무대에 오르거나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의 언니쓰가 ‘셧 업’(2016)으로 ‘뮤직뱅크’에 섰지만 어디까지나 자사 음악방송을 위한 특별무대 성격이 강했다.

차트 줄 세우기 무도가요제 넘어서나

90년대 유행한 형광색 의상을 입고 앨범 재킷 촬영을 한 싹쓰리. [사진 MBC]

90년대 유행한 형광색 의상을 입고 앨범 재킷 촬영을 한 싹쓰리. [사진 MBC]

‘지금 여기 바닷가’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사진 MBC]

‘지금 여기 바닷가’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사진 MBC]

반면 싹쓰리는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25일 데뷔 무대를 가진 ‘쇼! 음악중심’은 올해 최고 시청률인 2.1%를 기록했다. 통상 음악방송 시청률이 0.5~1% 사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블랙핑크ㆍ마마무 화사와 함께 1위 후보에 오른 이 날은 글로벌 팬덤에 밀려 2위에 그쳤지만, 예약 판매를 시작한 음반 판매량이 더해지면 추후 1위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30일 Mnet ‘엠카운트다운’ 등 후속 스케줄도 마련돼 있다.

전문가들은 캐스팅과 타이밍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기획이라고 입을 모았다. 유재석ㆍ이효리ㆍ비가 한 시대를 풍미한 당대 최고의 스타임은 분명하지만 2020년 여름이기에 가능한 조합이란 얘기다.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JTBC ‘효리네 민박’ ‘캠핑클럽’ 등으로 소박한 제주댁의 모습을 보여준 이효리가 린다G로 변신하고, ‘깡’ 패러디 열풍을 타고 코믹함을 더한 비가 비룡이 되면서 그동안 유산슬ㆍ링고스타 등 다양한 부캐(부캐릭터의 준말)를 쌓아온 유재석의 유두래곤과 만나 시너지가 났다”고 분석했다. 이어 “만약 그동안의 서사가 없었다면 새로운 캐릭터가 지니는 매력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린다G·비룡이 끌고 유두래곤이 민다 

이효리와 이상순이 함께 곡을 만들고 있는 모습. [사진 MBC]

이효리와 이상순이 함께 곡을 만들고 있는 모습. [사진 MBC]

싹쓰리 멤버들이 댄스팀 나나스쿨과 안무를 맞춰보고 있다. [사진 MBC]

싹쓰리 멤버들이 댄스팀 나나스쿨과 안무를 맞춰보고 있다. [사진 MBC]

실제 이효리와 비의 최근 앨범 성적은 다소 부진했으나 이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재조명됐다. 이효리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6집 ‘블랙’(2017)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남편 이상순과 함께 만든 ‘다시 여기 바닷가’에서 작사가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깡’이 수록된 미니앨범 ‘마이 라이프愛’(2017)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비 역시 댄스팀 나나스쿨과 머리를 맞대고 안무를 짰다. 여기에 이들의 지난 시절을 함께 한 스타일리스트 한혜연, 사진작가 홍장현, 뮤직비디오 감독 룸펜스까지 가세해 앨범 한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면서 다른 음악 예능과는 차원이 다른 서사를 구축해냈다.

90년대를 추억하는 움직임이 일시적인 문화 현상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조지메이슨대 이규탁 교수는 “2012년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전람회의 음악이 재조명되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90년대 음악이 대거 등장하고 유튜브 등을 통해 이를 꾸준히 소비하는 계층이 생겨났다”고 짚었다. 음악에 관심과 애착이 깊은 김태호 PD가 ‘무한도전’에서 진행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2014) 등 대형 프로젝트도 한몫했다. 2016년 젝스키스, 2018년 H.O.T. 등 1세대 아이돌 재결합도 ‘토토가’를 통해 이뤄졌다.

“90년대 음악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아”

90년대 스타일을 재현한 뮤직비디오. 살수차를 동원해 비 내리는 장면을 찍고 있다. [사진 MBC]

90년대 스타일을 재현한 뮤직비디오. 살수차를 동원해 비 내리는 장면을 찍고 있다. [사진 MBC]

90년대 걸그룹을 오마주한 치스비치. [사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90년대 걸그룹을 오마주한 치스비치. [사진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이를 듣고 자란 박문치ㆍ기린 등이 뉴트로를 표방하면서 장르로서 자생력도 향상됐다. 지난해 치즈ㆍ스텔라장ㆍ러비ㆍ치스비치 등 90년대생 여성 아티스트 4명이 모인 ‘치스비치’ 등 90년대 걸그룹을 오마주하는 팀도 생겨났다. 이 교수는 “덕분에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요즘 젊은 층에도 소구하는 음악이 됐다”고 덧붙였다.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주철환 교수는 “TV뿐 아니라 유튜브ㆍ넷플릭스 등 플랫폼이 다변화된 시대에 꾸준히 소환된다는 것은 그만큼 생명력이 있다는 뜻”이라며 “클래스를 넘어 클래식이 되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코로나19로 가요시장이 전체적으로 침체한 상황에서 TV 프로그램이 영향력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신보 발표가 연기되고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상반기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가 독점해온 음원 시장을 ‘놀면 뭐하니?’가 이어받았다는 것. 다음 달 1일 유두래곤의 ‘두리쥬와’, 린다G의 ‘린다’, 비룡의 ‘신난다’ 등 멤버별 솔로곡이 공개되면 차트 줄 세우기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 중소기획사 관계자는 “음악방송 한 번 나가기도 힘든 가수들도 많은데 12주간 순차적이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시작 자체가 공정하지 못한 게임”이라며 “방송사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발표한 음원으로 수익 사업을 하면서 생겨난 오래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일겸 대중문화마케터는 “나날이 떨어지는 시청률과 광고수익을 보완하기 위해 음악과 PPL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오랫동안 고민하며 준비한 가수들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제작진은 “음원과 앨범 판매 수익은 모두 불우 이웃 돕기에 기부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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