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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만남도 끊었다, 넉달째 선별진료소 지키는 20대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이대병원 선별진료소서 환자 안내 돕는 전지영씨 #“선별진료소 닫을 때까지 근무” 다짐

전지영(26·여) 씨의 근무처는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다.  지난 3월 초부터 이곳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업무를 돕고 있다. 취준생이던 전씨가 의료진처럼 방호복을 입고 선별진료소에서 일하게 된 사연은 뭘까.

2018년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하던 전씨는 넉 달 전 선별진료소 요원을 뽑는다는 강서구청 공모를 보고 망설이지 않고 문을 두드렸다.

전씨는 “솔직히 아무 것도 모르고 지원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면접 때 병원에서 코로나19 유증상자를 상대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순간 얼음이 됐다고 한다. 그때야 두려움이 살짝 밀려왔다. 그러나 가족의 응원에 힘을 냈다.

전씨는 “면접 후 망설였다”며 “부모님이 ‘코로나19를 종식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해라’고 조언해서 용기를 내 선별진료소 근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5일 문을 연 이대서울병원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는 지난 17일까지 4714명의 의심 환자가 다녀갔다.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지영씨. 사진 이대서울병원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지영씨. 사진 이대서울병원

처음 방호복을 입고 선별진료소를 찾은 유증상자를 마주쳤을 때 두렵고 떨렸다고 한다. 전씨는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 선별진료소를 찾은 그들이 고맙고 애틋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전씨는 '선별진료소를 찾은 사람이 확진될까봐 두려운 마음이 들텐데'라는 생각이 미치자 오히려 더 친절하게 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전씨는 “두려운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유증상자들이 ‘힘내세요. 고생하시네요’라는 격려를 건네면 오히려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을까. 전씨는 지난 4월 방문한 60대 남성환자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전씨는 “당시 몸도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선별진료소를 찾았는데 접수를 하다 보니 아버지와 동갑이었다”며 “아버지 생각이 나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고 떠올렸다.

아버지를 보는 것 같은 마음에 환자를 진료실까지 안내하면서도 속으로 ‘확진이 아니길, 확진이라도 반드시 회복해 가정으로 돌아가시길’ 기도했다고 한다. 전씨는 “다행히 음성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친구들과의 수다가 그리울 20대이지만 전씨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 친구들을 만나지 않는다고 했다. 전씨는 “선별진료소에서 근무를 시작한 후 퇴근 후 외출과 만남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들에게조차 처음엔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한다는 말을 하기가 꺼려졌다고 한다. 전씨는 “도망칠까 봐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친구들이 ‘자랑스럽다' '멋있다’며 격려를 해줘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지영씨. 사진 이대서울병원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전지영씨. 사진 이대서울병원

지난 1월 20일 국내 첫 환자가 나온 지 6개월이 흘렀다. 전씨는 “매일 선별진료소에서 유증상자들만 상대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하루빨리 코로나 유행이 종식되면 좋겠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어 “코로나19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겠지만 이대서울병원에서 선별진료소를 운영하는 마지막 날까지 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경험이 훗날 작가가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를, 사회를, 국가를, 지구촌을 힘들게 하고 있지만, 그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도 결국 우리가 함께 이겨냈다는 것을 글로 남기고 싶습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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