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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서울시장 성추행’ 폭로 열흘, 피해자 편은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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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여비서 성추행 의혹 사건이 터진 지 열흘이 지났다. 이번 사건이 던진 충격과 파장이 엄청나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의 속도가 너무 느리다. 그런 와중에 2차 가해가 난무하고 있다.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로 진상을 규명해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줘야 마땅하다.

서울시·여가부·경찰·검찰 진상 규명 의지 약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철저한 조사 천명해야

피해자는 엄연히 존재하는데 지금 돌아가는 분위기는 이상하다 못해 또 다른 의혹을 낳고 있다. 서울시·여성가족부·경찰·검찰·민주당·청와대 등 누구도 피해자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네 편 유죄, 내 편 무죄’로 몰고 가려는 게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일차적인 책임은 가해 당사자에게 있겠지만, 성범죄가 4년간 벌어졌다는데도 묵인·방조한 의혹이 있는 서울시에 큰 책임이 있다. 젠더특보는 피해자보다 박 전 시장 편에서 활동했고, 여성가족정책실장은 피해자 측의 기자회견을 연기시키려고 했다.

서울시 전·현직 고위 공무원과 비서실 관계자들은 박 전 시장 사후에 피해자 측에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는 식으로 회유했다. 이 또한 2차 범죄다.

이런 상황에서 책임이 무거운 서울시가 주도해 민관조사단을 꾸리려 했는데 발상부터 문제였다. 뒤늦게 서울시 내부 인사를 배제하기로 했지만, 외부 조사단은 강제권이 없어 생색내기란 지적이 나온다.

경찰의 행태는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지방경찰청과 경찰청은 피해자의 고소 내용 유출 의혹을 받고 있다. 법원은 박 전 시장의 휴대전화 3대에 대해 경찰이 신청한 통신 영장을 최근 기각했다.

문제는 경찰이 이번 사안의 핵심인 성추행은 물론 피해자의 고소 내용을 외부에 유출한 혐의(공무상 비밀 누설)를 쏙 빼고 박 전 시장의 변사사건 경위 수사로 한정해 영장을 신청한 대목이다.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이 명확해 부검 없이 장례를 치른 마당에 사망 원인 규명을 이유로 영장을 신청했으니 기각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경찰이 기각될 것이 뻔한 영장을 신청했다는 뒷말이 나온다. 직무유기다.

결국 검찰은 경찰청·청와대·서울시 관계자들의 공무상 비밀 누설 등의 혐의에 대한 고발 사건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에 배당했다. 하지만 이 정부와 코드가 맞는다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하에 있어 신속하게 처리될지 의문이란 시각도 있다. 검찰은 이용수 할머니가 5월 7일 제기한 ‘정대협 및 윤미향 관련 의혹’ 사건을 두 달이 넘도록 질질 끌고 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며 성평등 공약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6일 21대 국회 개원 연설 도중 여성 인권 문제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제라도 대통령이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 마련을 지시하는 것이 순리다.